방탄소년단 팬클럽 "일본 우익 OUT" 개념 팬덤의 무한확장

2018. 9. 1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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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신곡에 일본 우익 뮤지션 참여하자
팬클럽 반대 표명..빅히트, 해당 곡 제외

성희롱 발언 배우들엔 '페미니즘 서적 서포트'
'글로벌 스타' 탄생으로 역사의식도 중시

'스타는 팬들이 키우는 존재' 인식 늘고
SNS 등으로 팬들 목소리 적극 반영

[한겨레]

방탄소년단.

“우익 작사가와 협업을 중단하고 관련 자료를 전량 폐기하라.”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아니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팬클럽 ‘아미’가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팬카페에 올린 입장문이다.

지난 13일 <빌보드 재팬>이 일본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가 11월 발매되는 방탄소년단의 싱글 타이틀곡 ‘버드’ 작사에 참여했다고 보도하자, 팬들이 “협업은 무산돼야 한다”며 공식적으로 반감을 드러낸 것이다.

팬클럽은 “한국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에게 받은 피해는 절대 잊혀질 수 없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의 전쟁 미화는 세계적으로도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곡이 발매된다면 대중들이 방탄소년단을 우익 또는 친일 성향을 지닌 아티스트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방탄소년단의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우려한 목소리이지만, 우리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가 담긴 행동이라는 점에서 적잖은 이들이 놀라고 있다. 이들은 아키모토가 쓴 일본 아이돌 그룹 에이케이비(AKB)48 노래 중에 여혐적인 가사가 많다는 점도 이유로 들고 있다. 결국, 빅히트는 논란이 된 지 나흘만인 지난 17일 아키모토가 가사를 쓴 ‘버드’를 일본 신보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빅히트는 “제작상의 이유”라고 밝혔지만, 아미의 목소리에 응답한 것이다.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가 낸 입장문

아미의 행동은 달라진 팬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눈길을 끈다. 아무리 응원하는 스타라고 해도 그들의 선택을 맹목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방탄소년단의 20대 한 팬은 “공론화하면 오빠들이 타격을 받을 수도 있지만,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방탄소년단이 우익 작사가와 협업하는 것은 우리나라는 물론, 오빠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어서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조용필로 시작된 ‘오빠 부대’는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 에이치오티(HOT), 젝스키스 등 1세대 아이돌이 등장한 이후 ‘팬덤 문화’를 형성했고, 2000년 동방신기 등 2세대 아이돌이 등장하면서는 스타의 성공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서포터’의 의미로 발전했다. 이젠 한발 더 나아가 스타와 소속사를 감시하고, 합리적으로 비판하며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배우 설경구 팬클럽은 2017년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언론시사회에서 설경구가 설현한테 ‘백치미’라는 단어를 사용해 논란이 되자, 팬카페에 어떤 부분을 잘못했는지 조목조목 알려주고, 설경구한테 페미니즘 관련 책을 보내기도 했다. 설경구의 40대 팬은 “설경구가 책 인증사진을 올리는 등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응원하는 스타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팬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판매가 중단된 ‘여자친구 쿠션’

지난해 12월에는 아이돌 그룹 여자친구 소속사가 멤버들 사진이 새겨진 180cm 크기의 쿠션을 제작해 판매하자, 팬들이 ‘성상품화’라고 항의하며 해시태크 등으로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내 스타를 성적 대상으로 삼는 것을 막겠다는 노력이다. 소속사는 결국 판매를 중단했다.

스타가 잘못을 반복할 경우엔 가차없이 그룹에서 탈퇴를 요구하기도 한다. 최근 젝스키스 강성훈의 개인 팬클럽이 기부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데다가, 그가 “여긴 청담동이다”라며 골목을 지나는 과일 트럭을 비하하는 영상이 공개되자 그가 탈퇴하지 않으면 젝스키스 콘서트를 보이콧하겠다는 팬들도 등장했다. 콘서트를 보이콧하는 건 ‘오빠 부대’ 시절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슈퍼주니어 팬들은 멤버 강인이 음주운전을 거듭하자 그의 탈퇴를 요구한 바 있다. 문희준, 슈퍼주니어 성민 등도 팬들로부터 보이콧을 당했었다.

‘과일 트럭’ 비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젝스키스 강성훈.

달라진 팬덤은 기부에서 시작됐다. ‘조공 문화’라고 해서 팬들은 돈을 모아 스타에게 선물을 해왔는데 약 10년 전부터 스타의 이름으로 선행을 베푸는 기부가 이어졌는데 최근의 기부는 역사와 환경까지 생각한다. 지난 7월에는 배우 이광수의 중국 팬클럽이 연합해 중국 서부 사막화 방지를 위해 나무 1000천 그루를 숲에 기증했다. 아이돌 그룹 엑소 팬클럽은 월세와 운영비 어려움을 겪던 부산 위안부 역사관을 후원했다.

팬덤의 성장은 동경의 대상이었던 스타가 이제는 ‘키우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는 “<프로듀스 101>이 인기를 끄는 등 3~4년 전부터 스타는 육성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내 스타는 내가 잘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팬덤을 공고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미는 직접 만든 홍보 콘텐츠를 유튜브 등에 올리며 방탄소년단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팬들이 멤버 조합을 짜고 데뷔를 요구해서 그룹 제이비제이(JBJ)가 결성되기도 했다. 김선영 평론가는 “내가 ‘픽’한 스타인 만큼 모범을 보여라는 뜻이다. 내 스타가 바르게 성장할 수록 내 자존감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김윤하 음악평론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팬들은 예전보다 훨씬 빠르고 조직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낼 수 있다. 커뮤니티, 해시태그 운동 등 팬덤들이 목소리를 크게 내고, 이를 언론과 미디어에서 쉽게 주목하게 되고 소속사나 아티스트에서 반응을 빠르게 캐치하는 흐름이 생긴 게 팬덤이 달라진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팬층의 연령대가 다양해진 것도 여러 생각이 어우러지며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는 분석도 있다.

팬덤의 목소리가 역사, 사회 문제로까지 확장된 데는 한국 콘텐츠가 유튜브 등 글로벌 미디어로 끊임없이 소비되면서부터다. 차우진 음악평론가는 “2014년 뚱뚱한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려고 살빼고 예뻐진다는 한 여자 가수의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 올라오자 해외팬들 사이 논란이 됐다. 당시 한국 반응은 ‘특수분장 하느라 고생했다’같은 반응 정도였다”며 “한국 창작물이 더 이상 국내용이 아니라 글로벌 콘텐츠라는 걸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표현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른바 글로벌 세대인 요즘 10~30대들이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높은 등 세대가 달라진 것도 변화의 이유”라고 했다. 워너원의 한 팬은 “한국을 대표하는 모범적인 그룹이 되기 바라는 마음에 가사나 인터뷰 등을 꼼꼼하게 읽어 본다”고 말했다.

팬클럽끼리 내 스타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자는 선의의 경쟁도 영향을 미친다. 김선영 평론가는 “설경구에 앞서 배우 김윤석의 성희롱 발언 이후 페미니즘 서적 서포트가 보편화 됐다. 어떤 팬덤이 문제에 대처하는 모범적인 사례를 남기면 그 영향을 받아 다른 팬덤이 따라가며 보편적인 문화로 만들어 간다”고 말했다.

긴장관계는 중요하지만, 창의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차우진 평론가는 “무엇보다 창작하는 사람들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요즘 팬클럽 사이 유행하는 짤방은 달라진 팬덤을 잘 보여준다. ‘너 내가 사랑하지만 너 지금 헛소리한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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