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우익 '악플' 이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새로운 뮤즈

나원정 2018. 7. 2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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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신작 '어느 가족'
주연 안도 사쿠라 모성애 연기에
케이트 블란쳇 "흉내 내고 싶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고도 일본 우익의 '악플'에 시달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영화 '어느 가족'(26일 개봉). 가족이 붕괴된 현대 일본 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를 되묻는 영화다.[사진 티캐스트]
“도둑질하는 가족 영화라고? 전 세계에 일본을 망신시킬 셈인가!” 오는 26일 개봉하는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 ‘어느 가족’은 올해 칸국제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고도 일본 우익세력의 공격에 시달렸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일본 어느 가족의 어두운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서다. 할머니(키키 키린 분)의 연금과 좀도둑질로 살아가던 가족은 어느 날 추위에 떨고 있던 다섯 살 소녀 유리(사사키 미유 분)를 집에 데려오고, 그로 인해 감춰왔던 비밀이 들통 나게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최근 일본에서 문제시 된 ‘유령 연금’(수급 당사자의 사망을 감추고 연금을 계속 받는 범죄), 아동학대 등 무거운 이슈를 특유의 담담한 가족영화로 풀어냈다. 가족이 저지르는 범죄는 응원하기 힘들지만, 어느새 귀염 받는 ‘막내딸’이 된 유리까지 온가족이 온기를 나누며 가난을 헤쳐 나가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 가슴이 뭉클하다. 가족을 묶어주는 건 핏줄일까, 함께 보낸 시간일까. 감독이 묻고 싶었다는 질문이다.

일본에서도 영화에 대한 입소문이 우익의 ‘악플’ 공세를 이겼다. 지난달 8일 개봉 한 달 남짓 만에 극장 수입이 40억 엔(약 400억원)에 육박하며 역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다.
지난 5월 '어느 가족' 칸영화제 공식 상영 레드카펫에서 주연배우 안도 사쿠라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배우 키키 키린(왼쪽부터)이 인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여기엔 배우들의 열연도 한몫했다. 특히 엄마 노부요 역 배우 안도 사쿠라(32)는 칸영화제부터 극찬 받았다. 키키 키린, 릴리 프랭키 등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에 단골 출연해온 베테랑 배우들의 안정감 있는 연기에 날것의 감정을 더했다.

“앞으로 우리가 찍는 영화에 우는 장면이 있다면 안도 사쿠라를 흉내 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 배우 케이트 블란쳇은 이렇게 호평했다. 가족을 잃게 된 노부요가 경찰의 어떤 추궁에 눈물 흘리는 장면을 두고서다. 전기충격을 받은 듯 멈칫하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하염없이 닦아내는 그의 맨얼굴은 영화가 전하고자 한 모든 진심을 찰나에 드러냈다 해도 좋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배우의 솔직한 반응을 담고 싶어 경찰이 할 질문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본지와 프랑스 칸 현지 인터뷰에서 “이 장면은 온전히 그녀 안에서 흘러나온 것, 살아있는 것”이라며 “그녀가 연기할 땐 공기가 변하고 거룩한 느낌이 있다”고 돌이켰다. 처음엔 40대로 구상했던 노부요 캐릭터의 나이를 낮춘 것도 안도 사쿠라를 캐스팅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놀라운 배우란 건 이미 알고 있었기에 꼭 한번 작업하고 싶었다”면서 “시나리오 초고를 쓰던 즈음 같은 동네에 살던 안도 사쿠라와 우연히 마주쳤고, 그녀가 맡아주면 좋겠단 생각에 나이를 낮춰 제안했다”고 귀띔했다.
노부요(안도 사쿠라 분, 오른쪽 둘째)는 어둠 속에 홀로 남겨져있던 유리(사사키 미유 분)를 자신의 집에 데려와 보살핀다. 안도 사쿠라의 본능적인 연기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유의 가족영화에 날 새로운 분위기를 불어넣었다. [사진 티캐스트]

실로 안도 사쿠라는 한국에선 낯설지만 일본에선 최근 손꼽히는 연기파다. 배우이자 감독인 아버지 오쿠다 에이지 등 영화인 집안 출신. 역시 배우이자 감독인 언니 안도 모모코가 연출한 영화 ‘0.5미리’로 2015년 처음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가 이듬해 한심한 백수의 권투선수 도전기를 담은 ‘백엔의 사랑’으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는 등 주로 삶에 처절하게 패배하고도 본능적으로 다시 일어서는 캐릭터를 생생하게 소화해내 주목받았다. 지난해 30주년을 맞은 도쿄국제영화제에선 ‘일본영화의 뮤즈’로도 선정됐다. 영화팬이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이 된 이유다.
‘어느 가족’에서 그의 모성애 연기가 유독 빛난 것은 지난해 배우인 남편 에모토 타스쿠와 첫 아이를 얻은 직후 촬영에 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유리 역의 아역배우 사사키 미유가 실제 자신의 딸과 생일이 같아 영화에 더 인연을 느꼈다”는 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촬영현장이 편안하고 행복했다. 한 장면, 한 장면 찍으면서 영화 속 가족처럼 관계를 키워나가는 기분이었다”고 전했다.
영화 '어느 가족'에서 바닷가로 놀러간 가족의 행복한 한때. 이들을 바라보며 할머니(키키 키린 분)가 "예쁘네"라 중얼거리는 건 진심에서 우러나온 배우의 애드리브였다. [사진 티캐스트]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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