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음악

[김광수 인터뷰①]"저는 가요계 적폐도, 미다스의 손도 아닙니다"

이지석 2018. 5.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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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석·홍승한기자]MBK엔터테인먼트 김광수 음악총괄프로듀서만큼 가요계에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인물이 또 있을까?

1985년 인순이 매니저로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그는 30년 넘게 ‘최고의 제작자’로 불렸다. 손대는 가수마다 히트시켜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만 받은 건 아니다. 요즘 팬들 사이에서 그는 ‘가요계의 적폐’, ‘연예계의 악’으로 회자된다. 근거가 될 자료는 차고 넘친다.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연예계 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연루됐다. 특히 2012년 그룹 티아라 ‘화영 왕따사건’ 후속처리 미숙이 결정타가 됐다.

최근 서울 논현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김광수 프로듀서는 “나에게 물어보고 싶은 건 뭐든 물어봐 달라”고 말했다. 30년 넘게 온갖 가요계 이슈에 연관돼 왔지만 사실 공식적으로 해명을 하거나 변명을 하는 자리를 자주 가져온 그는 아니었다.

그도 잘 알았다. 자신의 본심을 털어놔도 대중은 그의 말에 오롯이 귀를 기울여주지 않으리라는 걸. 가요 팬과 그 사이 불신의 골이 생각보다 깊다는 걸. 그리고 그의 자존심이 변명, 해명을 허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한번쯤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다고 했다.

김 프로듀서와 인터뷰는 4시간 동안 진행됐다. 그는 이야기 도중 3차례 눈물을 흘렸다. 특히 ‘티아라’라는 주제가 나오면 깊은 회한을 감추지 못했다. 숨겨 왔던 가족사, 34년간 매니저로 살아오며 느낀 점들, 그에 대한 오해와 편견 그리고 해명, 최근 제작에 참여했던 KBS 아이돌리부팅 프로젝트 ‘더유닛’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가 이어졌다.

가요 제작자 김광수를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요팬이라면 그의 이야기에 한번쯤 귀를 기울여볼만 하다. 지난 행보와 업적에 대한 평가와 해석은 엇갈릴 수 있지만 그가 1985년부터 34년째 가요계의 중심에 서있는, 업계 최고의 ‘문제적 인물’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다음은 지난 소문과 오해, 평가에 대해 그가 직접 밝힌 해명과 설명.

-90년, 95년, 2002년 총 세차례나 연예계 비리 사건에 연루됐고, 사법처리된 적도 있다. ‘비리 제작자’ 이미지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억울한 부분이 있는가.

내가 세차례 연루된 이유는 그 시기마다 내가 너무 잘 나갔기 때문이다. 90년, 95년, 2002년 당시 “연예계 실세가 누구야?”라고 물으면 모두가 “김광수입니다”라고 대답하던 시절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잘못한 부분은 10% 정도라고 말하고 싶다. 잘못한 부분이 일부 있지만 내가 말도 안되는 편법이나 뒷거래를 통해 억지로 음악을 히트시킨 적은 없다. 20~30년 전 누구나 하는 관습, 관행에서 크게 벗어난 행동을 한 적은 없다.

매니저를 시작한 85년도에 나는 ‘남들이 하는 악습을 따르지 않고, 음악으로만 승부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지금도 똑같다. 나는 매니져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정당한 방식으로 음악을 잘 만드는 걸 늘 우선시 했다. 김종찬, 윤상, 김민우, E.O.S, 노영심은 음악이 좋아서 뜬거지 내가 뒤에서 뭔가 담합을 하고, 뒷거래를 해서 띄운 가수들이 아니다. 그들의 노래가 좋았던 거지, 좋지 않은 노래를 내가 억지로 띄운 적은 없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차은택 감독이 연루되자 오랜 인연이 있던 김광수 회장도 혹시 연루된 게 아니냐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었다.

어릴 때부터 그런 사건을 워낙 많이 봤고, 겪어왔다. 애초에 그와 연관된 한류 자금에 관심이 없었다. 위험하고, 이건 아닌 거 같다고 판단했었다. 차은택에게도 자꾸 그런 식으로 노출되면 좋지 않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오랫동안 일하며 여자 연예인과의 구설수가 많았다.

왜 그런 소문이 나냐면 내가 소속 연예인에 미친 정신병자처럼 일하기 때문이다. 눈떠서 잘 때까지 소속 연예인만 생각한다. 밖에서 봤을 때 오해를 살 수 있다.

1990년 11회 청룡 영화상 때 일이다. 내가 황신혜와 일하고 있을 때였는데 故 최진실의 인기가 절정인 시기였다. 공교롭게 둘다 인기스타상 후보였다.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꼭 황신혜가 최진실을 이겼으면 했다. 그렇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로비 등 정당하지 않은 방법을 쓰고 싶진 않았다.

인기스타상은 신문에서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을 오려서 엽서에 붙여 보내면 집계를 통해 수상자를 선정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영화상을 운영하는 신문사에, 내가 한번에 구매할 수 있는 수 있는 신문의 수량이 어느 정도인지 물어서 한꺼번에 7만부를 샀다. 그리고 아르바이트생 십수명을 동원해 일주일 동안 엽서를 보냈다. 그래도 최진실에 1~2만표 차이로 졌지만 결국 공동 수상을 하게 된다.

90년대 초반 전도연 매니저를 할 땐 당시 출연하던 ‘우리들의 천국’ 배역에 맞는 옷을 사기 위해 일본을 드나들었다. 매니저는 그쯤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00년대 초반 이미연을 맡을 땐 17억원을 들여 드라마 ‘명성황후’ OST와 조수미의 ‘나 가가든’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이미연에게 맞는 콘셉트를 찾기 위해 명성황후 관련 책을 5권 정독했다.

구하라와 연루설도 있었다. 티아라 효민 때문에 알게 됐는데 2011년 무렵 소속사 DSP미디어와 전속계약 관련 문제가 생겼을 때 구하라가 내게 자문을 구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내가 네 소속사 선배 출신인 이효리와도 일해봤는데 이효리도 의리를 보였었다. 네 소속사 DSP 대표(故 이호연 대표)가 너를 믿는데, 나가는 건 아닌 것 같다. 네가 먼저 복귀하면 다른 멤버들도 복귀할 것이다”라고 조언해줬고, 실제 그렇게 됐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내세울게 아무 것도 없다. 가족 관계도 복잡하다. 누군가와 결혼하려면 상대 부모님과 만나야 하고 “부모님이 뭐하시냐”, “형제 관계는 어떻게 되냐”는 질문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싫었다. 내가 결혼을 하려면 상대가 내 가족관계를 전혀 신경쓰지 않을만큼 내가 엄청나게 유명해서 나 하나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34년째 하고 있고, 그래서 끊임없이 뭔가를 하는 것 같다. 결국 그렇게 일하다 보니 결혼을 하지 못했다.

-그룹 터보가 막 데뷔했을 무렵 김광수가 멤버들인 김종국과 김정남을 가두고 구타했다는 소문이 지금도 떠돈다.

1년 전 김종국과 만났는데 “사람들은 형이 나를 때린 걸로 알아”라고 하더라. 왜 해명을 안하냐길래 “내가 말한다고 듣냐. 대중은 티아라 사건으로 나를 버렸다. 내가 이야기하면 듣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예전 조성모를 데리고 있던 우리회사(GM기획)와 터보의 회사가 상장을 목적으로 합병을 했었다. 터보 회사의 대표는 내가 아니었다.

-소속사 연예인들의 재계약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 왜 소속 연예인들이 자꾸 떠나나.

90년대까지는 소속 가수와 처음 계약서를 쓸 때 3년 이상 계약해 본 적이 없다. 김종찬, 김민우, 윤상, E.O.S 그리고 조성모까지도 모두 그랬다. 3년 이상 장기 계약을 맺는 건 양아치같은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회사가 가수와 7년, 10년 계약할 때도 나는 3년을 고수했다. 스스로 그런 행동이 납득이 가질 않았기 때문이다. 계약기간이 끝날 무렵 가수의 몸값이 너무 높아져 내가 잡을 수 없게 되면 보내고 다른 가수를 만들었다.

2000년대 SG워너비와 첫 계약서를 쓸 때 처음 4년 계약을 맺었다. 1년 늘리는데 죄책감이 들더라. 티아라는 처음에 5년 계약을 맺었다. 1년씩 계약 연장을 해 1년을 채웠다. 지금은 업계 표준계약서에 준해 7년 계약을 맺는다.

나는 신인 때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직접 관여하는 스타일이다. 나는 내 주장이 정확하다. 솔직하고, 진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소속 연예인은 최선을 다해 돕는다. 힘이 없고 스타가 되고 싶은 애들을 잘 끌어주는 게 내 역할이다.

티아라 지연을 처음 만났을때 중3이었는데 그에게서 절실함을 느꼈었다. 당시 지연은 다른 소속사 연습생이었다. 내게 인사를 하러 왔는데 잘 될 것 같더라. 30만원을 용돈으로 주면서 ‘큰 스타가 될 거 같다. 그렇게 되면 갚으라’고 했다. 다음날 5000원어치 귤을 봉지에 싸들고 나를 찾아왔다. 그래서 다시 30만원을 용돈으로 주었다. 당시 지연의 부모님이 시장에서 방앗간을 했는데 다음날은 떡을 싸가지고 왔더라. 바로 지연의 소속사 대표에게 연락해 계약금의 10배를 물어주고 지연과 계약을 맺었다. 나는 20대 초반에 연예인을 꿈꿨었기 때문에 그런 절실함이 있는 아이들을 잘 안다.

하지만 너무 계산이 앞서도 잘못된 행동을 하는 친구에게는 냉정하게 대한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입으라는 옷을 군말없이 입던 애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면 안입겠다며 싸우는 것처럼 연예인도 어느 정도 성장하면 제작자의 말을 듣기 싫어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나는 ‘이 친구와 헤어질 때가 되었구나’라고 생각한다. 부딪히고, 이해해 가며 절충할 자신이 없으면 “내가 너를 이기려고 하지 않을게, 네가 이길 수 있는 회사로 가라”고 말하고 떠나보낸다.

SG워너비의 경우엔 계약이 만료될 당시 다른 회사에서 계약금 9억원을 제시받았다. 내가 제시한 금액은 3억5000만원이었다. 그런데도 멤버들이 3억 5000만원에 나와 재계약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냈다. “너희가 의리를 지키는 건 어떨 땐 그런게 필요 없다. 내 입장에서 고맙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돈을 더 우선시 해야 할 때가 있다. 가라”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티아라 계약 만료 이후 나와 사이가 멀어진 줄 안다. 그렇지 않다. 어제도 지연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다른 멤버들과도 모두 친하게 지낸다.

-SG워너비 데뷔 당시 “50만 장을 못 팔면 스스로 음악계를 떠나겠다”고 했고, 티아라 데뷔 때도 소녀시대, 원더걸스를 잡겠다는 선언을 했었다. ‘공약’을 남발한다는 평가가 있다.

인정한다. 예전부터 그렇게 치열하게 승부를 걸어왔다. 항상 외로운 싸움을 해오다보니 강해져야 한다는 마음이 늘 앞선다. 실제로 일을 정말 열심히 해왔다. 그러다 보니 그런 말들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걸그룹 다이아 멤버들은 데뷔하자마자 곧 바로 ‘프로듀스 101 시즌1’(2016년)에 출연하며 ‘혹사 논란’이 일었다. 또 정채연 등이 아이오아이 활동을 하면서 다이아 활동을 병행해 일부 팬이 불만을 토로했다.

‘프로듀스 101’을 하기 전 엠넷 한동철 PD가 나를 찾아왔다. 당시 참가자를 선발하는데 은진, 정채연, 기희현을 출연시켜 달라더라. 솔직히 나는 반대를 했다. 다시 안준영 PD와 함께 찾아와 프로그램에 출연해 달라고 하더라. 그때 한PD가 나를 설득하기 위해 “그냥 이렇게 활동하면 다이아는 죽어도 티아라를 못 이긴다”고 했는데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았다. ‘프로듀스101’을 통해 도약의 기회를 마련해주겠다는 설명이었다.
출연하는 대신 다이아는 이미 데뷔를 한 팀이기 때문에 최종 멤버로 선발되더라도 미리 잡혀 있는 앨범 스케줄을 소화하게 해달라고 요구했고, 엠넷 측도 수용했다. 우리는 미리 약속한 대로 일정을 소화했는데, 일부 가요팬의 오해를 받았다.

-최근 다이어 은진이 건강상의 이유로 팀 탈퇴를 선언했다. 아티스트 건강관리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굳이 해명이나 변명을 하지 않는 것은 은진이 어린 나이이고, 미래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를 치료하기 위해 큰 대학병원 특실에 입원시키고, 회사 매니져부터 총무까지 모든 직원이 총동원돼 병실에서 하룻밤씩 돌아가며 숙식하는 등 은진의 건강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 알아달라. 은진의 탈퇴는 어쩔 수 없었다.

-왜 34년째 끊임없이 구설수에 휘말린다고 생각하나. ‘김광수는 가요계의 적폐’라고 말하는 일부 팬도 있다.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적폐가 아니다. 왜 늘 구설수에 휘말렸냐고? 1등이었으니까. 구설수는 당연하다. 지금 YG 양현석, JYP 박진영이 자주 구설수에 휘말리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그들이 지금 1등이니까. 나는 80년대부터 2012년 티아라 왕따사건 이전까지 늘 1등이었다. 1등이 어떤 자리냐고 누가 묻길래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미치도록 재밌다. 누가 추월할까봐 미친듯이 전력질주해야 하는 자리다. 누군가 나를 끌어내리기 위해 늘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나는 특이한 가정환경 탓에 성장과정 속에서 기쁘거나 행복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 승부욕에 유독 집착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큰 사건이 터졌을 때 바로 바로 해명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2012년 ‘티아라 왕따논란’이 커졌을 때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는 2012년 ‘티아라 왕따 논란’이전까진 늘 연예계에서 정상에 있었다. 업계에서 얼마나 많은 음해와 시기가 있었겠는가. 억울한 일도 많이 겪었고, 헛소문도 많았다. 왜 그때그때 해명을 하지 않았냐고? 어쩌면 내가 회피했는지 모른다. ‘구태여’, ‘귀찮게’라고 하며. 자존심이 세서 그럴 수도 있다. 승승장구할 때 생긴 자만심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연예인으로 살 것도 아닌데 ‘안티’가 많다고 불편할 게 뭐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시간이 지나 내가 언론을 통해 ‘티아라 왕따논란’을 해명했다면 팬들이 “김광수가 언론플레이하네?”라고 하지 않았을까. 티아라 사태로 한창 시끄러울 당시, 화제의 프로그램이었던 MBC ‘무릎팍도사’ 같은데 나가 해명하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내가 나가 솔직히 얘기하면 오해가 풀릴 것이라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대중은 ‘김광수가 저런 인기 프로그램에 나와 변명하는 걸 보면 힘이 세네’라고 받아들일 것 같았다.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에 와서 대중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사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고, 저런 사람이 아니고”하고 해명하면 나를 더 욕하지 않을까? 과연 대중이 받아들일까? 자신이 없다. 아마 대중은 내가 또 ‘힘자랑’ 한다고 생각할 것 같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내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내가 ‘조폭’인줄 알더라. 내가 금목걸이를 걸치고 양복만 입고 다닐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날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실제와는 거리가 먼 이미지다.

-그래도 구설수에 휘말리고, 팬들의 비난과 비판 여론을 접하다보면 스트레스가 클 것 같다.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별로 없다. 티아라 왕따사건이 났을 땐 사람들이 ‘댓글에 난리가 났다’고 하는데 댓그을 읽는 방법을 몰라 읽지 못했다. 온라인 댓글 보는 방법을 1~2년전에야 알았지만 지금도 읽지 않는다. 나는 이메일 주소도 없다. SNS도 잘 모른다. 댓글을 볼줄 모르는게 다행인 것 같긴 하다. 댓글들을 모두 읽었다면 아마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가요계 ‘미다스의 손’이라 불려왔다. 별명에 만족하나.

80년대부터 그렇게 불려왔다. 그러나 마음에 안든다. 나는 추억팔이를 싫어한다. 이전에 뭘 했는지가 뭐가 중요한가. 예전에 ‘미다스의 손’이었으면 뭐하나. 지금 빈손인데.

“내가 옛날에 누구였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 지금 내가 상대보다 잘 되려면 덜 자야 한다. 지금 내가 두시간 덜자고 덜 공부하고 젊은 사람을 어떻게 이기나? 못이긴다. 내가 열심히 하면 대중이 알아준다. 열심히 하지 않고 만든 결과물을 누가 알아주겠나? 그리고 나를 내려놓고, 아티스트와 지속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내가 나를 내려놓으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지금 업계에 나보다 오래된 매니져는 없다. 심지어 SM 이수만 회장도 나보다 늦게 제작을 시작했다. 그러나 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늘 똑같다. 34년째 이 일을 하고 있고, 젊게 살려고 노력중이다. 여전히 85년 5월 인순이 매니져를 시작한 그때와 똑같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

monami153@sportsseoul.com

사진 | MBK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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