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버린 이병헌, 그가 선택한 진짜 사랑은..

김형욱 입력 2018. 4. 1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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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125]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사랑의 본질을 말하다

[오마이뉴스 글:김형욱, 편집:오수미]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포스터. ⓒ눈 엔터테인먼트
1983년 여름의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서인우(이병헌 분)의 우산 속으로 젊은 여인이 달려 들어온다. 첫눈에 반한 게 분명한 인우는 왼쪽 어깨가 젖어가는 줄도 모른 채 멍한 표정이다. 그날 이후 인우는 매일 그 자리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린다.

다시 한 번 어느 날 인우는 학교 교정에서 그녀를 발견한다. 그렇게 국문학과 서인우와 조소과 인태희(이은주 분)의 만남이 시작된다. 급속도로 친해져 사귀게 된 그들, 여타 커플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인우가 군대에 갈 때 태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의 관계는 그렇게 끝이 났다.

17년이 지나 인우는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되었다. 가정을 꾸리고 딸까지 있는 그인데, 태희를 아직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담임으로 있는 반의 임현빈(여현수 분)이라는 학생이 자꾸 태희를 연상시킨다. 처음에는 그럴 수 있다는 정도로 넘어 갔지만, 너무나 디테일한 부분까지 계속 겹쳐지면서, 인우는 현빈이 태희라고 생각하게 된다. 17년 전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진짜 현빈은 태희일까?

판타지적 장르가 섞인 멜로-로맨스 영화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한 장면. ⓒ눈 엔터테인먼트
2000년대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 <접속> <약속> < 8월의 크리스마스> <미술관 옆 동물원> <연풍연가> <내 마음의 풍금> 등 주옥같은 멜로 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멜로영화 열풍은 2000년대 초까지 이어졌고 정통이 아닌 판타지 장르가 조금 섞인 듯한 영화들도 등장했다. <동감> <시월애> <번지점프를 하다> <클래식> <내 여자친구를 사랑합니다> <인어 공주> 등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는 2000년대 초반 멜로 영화 판도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영화에서 판타지 요소는 그저 수단일 뿐이다.

영화의 초반부는 정말 소소하고 평범한 사랑의 시작을 보여준다. 분명 거기에는 일부러 보여주지 않고 감춘 절절함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17년 후를 다룬 후반부에서 하나하나 회상하며 특별하고 본질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그렇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본질'에 관한 영화이다. 거기에 '사랑' 정도를 덧붙일 수 있겠다. 사랑의 모습은 '남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 '인간 대 인간'까지 나아간다.

사랑의 외연 그리고 본질

영화를 처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초반보다 후반을 눈여겨 볼 수밖에 없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2001년 개봉 당시 꽤 파격적이었다. 외연상 인우가 남학생 현빈에게 마음이 가는 건 당연히 동성애로 보인다. 현빈이 태희와 비슷한 것도 모자라 태희 그 자체라는 확신이 선다 해도 말이다. 이 부분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의 정의가 드러난다. 사랑은 외연이 아닌 본질이라는 것 말이다.

인우에게 현빈은 현빈이 아닌 태희처럼 보일 것이다. 평생 단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는 그의 마음 속에 영원히 남아 있는 그녀 태희 말이다. 그들의 사랑이 아주아주 오래 전부터 이어졌을 거라고 상상할 수도 있다. 또 아주 오랜 후에도 계속되지 않을까.

절벽에서 바다에 떨어지면 기적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죽고 말지만, 같은 절벽에서 번지점프를 한 뒤 특별한 사고가 없으면 살아 돌아와 다시 만난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 있고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회자정리 거자필반'의 불교 색체가 덧붙여졌다고 할 수 있겠다.

인간 대 인간의 사랑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한 장면. ⓒ눈 엔터테인먼트
영화가 말하는 사랑의 본질은 또 다른 차원까지 나아간다. 남자 여자를 떠나, 인간을 사랑하는 본질까지 내다본 것이다. 인우가 남학생의 모습을 한 태희를 사랑한다는 건 인간 태희 그 자체를 사랑한다는 방증이다. 인우 스스로도 남자, 가장, 동성애자 등의 정체성을 넘어 인간 인우가 됐다. 이 영화는 2000년대 초반 사랑의 본질을 이렇게 표현하며 한 발짝 나아갔다.

결혼하기도 한참 전 지금의 아내랑 막 사귀기 시작했을 때 그녀가 내게 자주 물어봤다. "나 사실 남자야. 나이도 엄청 많아. 그런데도 나랑 사귈 거야?" 나는 그때마다 "그래. 당연하지"라고 답했다. 시간이 흘러 결혼하고 나서 그때를 돌이켜 보면, 아내는 '인간 그 자체로 사랑하는 건지' 시험해 본 게 아닐까 싶다.

흔히 "다음 생애에도 지금의 남편 혹은 배우자와 다시 만날 거냐?"라고 묻곤 한다. 그때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난처럼 "훨씬 예쁘거나 멋있고 훨씬 돈 많은 사람과 만날 거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다들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운명의 상대가 다름 아닌 아주 오래 전부터 단 한 사람이고, 그 어떤 모습을 하고 나타나도 관계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는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 살고 있는가. 그 인연의 끈이 닿기까지 비현실적인 확률을 되새기며, 극 중 서인우의 대사를 읊어본다.

"이 세상 아무 곳에다 작은 바늘 하나를 세우고 하늘에서 아주 작은 밀씨 하나를 뿌렸을 때 그게 그 바늘에 꽂힐 확률. 그 계산도 안 되는 확률로 만나는 게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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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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