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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극적인 삶' 최은희라는 별이 지다

고희진 기자 입력 2018.04.16. 23:50 수정 2018.04.17.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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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2년간 신장투석…향년 92세
ㆍ1950~1960년대 영화계 이끌어…남편 고 신상옥 감독과 ‘납북’
ㆍ1999년에야 돌아와 후진 양성…한국인 최초 해외영화제 수상

1950~1960년대 한국 영화계의 대표 스타 최은희는 14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한국인 최초로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한국 영화사 최고 배우로 꼽힌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영화 같은 삶’ 또는 ‘영화보다 더 극적인 삶’. 생전 ‘배우 최은희’를 수식하던 말이다. 북한에 납치된 뒤 탈출한 파란만장한 역정을 두고 붙이는 말이다. 최은희씨는 1950~1960년대 한국 영화 전성기를 이끈 배우다. ‘해방 후 한국영화사 대표 배우’ ‘해외 영화제 한국인 최초 수상’ 같은 수식어도 뒤따른다.

최씨가 16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의 장남 신정균 감독은 “병원에 신장투석을 받으러 가셨다가 임종하셨다”고 이날 밝혔다. 2006년 남편인 고 신상옥 감독이 타계한 뒤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장호 감독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건강이 나빠진 지 오래됐다. 2년 넘게 투석을 해온 것으로 안다”고 했다. 1926년 경기 광주에서 태어난 최씨는 1943년 극단 아랑에 연구생으로 들어가서 해방 전까지 활동했다. 해방 후 재건된 토월회, 극예술협회에서 무대생활을 했다. 영화 데뷔작은 1947년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서>다.

한국 전쟁 기간 피란지 대구와 부산에서 국립극단 신협의 배우로 활약했다. 1954년 신상옥 감독(1926~2006)의 <코리아> 출연을 계기로 신필름 대표 배우로 활동한다. 두 사람은 그해 결혼했다. 톱스타와 촉망받는 감독의 결혼은 장안의 화제였다. 이후 영화왕국으로 불린 ‘신필름’에서 두 사람은 ‘동지적 관계’를 맺어간다.

최씨는 1958년 <어느 여대생의 고백>부터 명실상부한 최고 스타 자리를 굳혀나간다. 홍성기 감독과 김지미씨의 <춘향전>과 격전을 벌인 <성춘향>(1961)이 성공하면서 최전성기를 맡는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1961), <벙어리 삼룡>, <빨간 마후라>(1964)에 나왔다.

최씨는 “가장 한국적인 여인상’으로 혹은 오랜 세월을 인고하는 홀어머니 역할로 많은 작품에 출연해왔고…다른 한편으로 최은희는 ‘모던’하고, 세련되고 또 카리스마 넘치는”(김한상 한국영상자료원)배우였다.

최씨는 한국 영화 사상 세번째로 데뷔한 여성감독이다. 1965년 <민며느리>에 이어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을 연출했다.

대표 ‘영화인’이었다. 신 감독 타계 때 최씨는 “영화밖에 모르는 분”이라고 했는데, 최씨의 삶도 영화뿐이었다.

1966년 안양영화예술학교를 설립한 것도 영화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1978년 ‘납북’도 학교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홍콩을 방문했다 벌어졌다. 신 감독도 그해 7월 납북됐다. 두 사람은 1983년 북한에서 재회한다. 신 감독과 신필름영화촬영소를 세운 최씨는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 <심청전>(1985) 등에 출연했다. <약속>(1984)을 감독했다.

최씨는 제2회 부일영화상(1959)에서 <지옥화>로 여우주연상을 시작으로 수많은 상을 받았다.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탔다. 한국인 최초 해외영화제 수상이다. 최씨는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어 신 감독과 재혼했다. 1999년 귀국한 그는 2001년 극단 신협의 대표로 취임했다. 이듬해 신필름영화예술센터의 설립을 주도했다. 두 사람은 2004년 동아방송대 석좌교수로 임명돼 학생들을 가르쳤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가운데)과 만난 최은희(오른쪽)와 신상옥. 엣나인필름 제공

최씨는 2011년 제56회 대한민국 예술원상 연극·영화·무용부문 상 등 여러 공로상을 받았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신정균 감독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영화인장으로 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조용한 가족장을 원하신 어머니 뜻을 따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를 열정이 넘쳤던 배우로 기억했다. 신 감독은 이어 “연기가 하고 싶어서 가출까지 하셨던 분이다. 기획, 제작에도 관심을 보이셨다. 열정은 한국 최고였던 분”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2010년 장기기증 서약을 하고, 천주교 서울대교구 장기기증사업기구인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그는 당시 정진석 추기경과 만나 “생을 정리하면서 뭔가 뜻깊은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신정균(영화감독)·상균·명희·승리씨 등 2남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12호실 이전 예정)이며, 발인은 19일 오전 8시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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