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셀럽파이브, 주인공이 되다
아이즈 ize 글 강명석
여성 예능인 송은이, 김신영, 안영미, 김영희, 신봉선이 결성한 그룹 셀럽파이브는 한국 걸그룹의 제작 방식을 완전히 뒤집는다. 멤버들은 10~20대 연습생이 아니라 합치면 “경력 100년”이라는 개그우먼들이고, 멤버 구성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나 ‘국민 프로듀서’가 아니라 먼저 들어온 멤버들의 결정에 따른다. 셀럽파이브의 활동 과정을 담은 유튜브 채널 비보TV의 ‘판벌려’ 영상에서 이미 합류를 확정한 멤버들이 YG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안영미에게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합격 여부를 말하는 장면은 이 팀이 누구의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김신영이 일본의 여고생 댄스팀 tdc의 춤을 춰보고 싶어 송은이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만들 수 있던 팀이었고, 그들은 tdc를 만나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는 것부터 홍보까지 직접 결정하고 해결한다.
송은이와 함께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 등 여러 활동을 함께 하는 김숙이 출연했던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한국의 걸그룹들이 대부분 어떻게 제작되는지 보여줬다. 출연자들은 노래와 춤 트레이닝을 받고, 프로듀서가 정한 콘셉트에 어울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보다 많은 사람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셀럽파이브는 걸그룹의 기준을 스스로 다시 설정한다. 과장된 화장을 한 채 맨발로 춤을 춘다. 노래 ‘셀럽파이브’의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서는 춤추기 편하게 스타킹의 발뒤꿈치 쪽을 잘라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tdc가 췄던 원래의 춤에 비해 군무가 딱 맞아떨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MBC ‘쇼 챔피언’에서 ‘셀럽파이브’를 불렀을 때, 마치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1에서 정채연이 그랬던 것처럼 노래 마지막에 김신영의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그리고, 환호가 쏟아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다른 걸그룹들이 받던 반응을 이끌어냈다.
매스 미디어의 힘을 좀처럼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팀의 사실상 프로듀서인 송은이는 끊임없이 ‘판’을 벌려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TV프로그램의 대안을 찾아나갈 수 밖에 없다. 셀럽파이브가 화제를 모은 것은 ‘쇼 챔피언’ 무대지만, 이 팀이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는지 보여주는 것은 그가 만든 콘텐츠랩 비보의 유튜브 채널 비보TV에서 만든 영상 ‘판벌려’를 통해서다. 이 영상들을 통해 셀럽파이브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보여주고, 송은이와 김신영이 일본으로 가서 tdc를 만나 안무 사용을 허락받았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설명한다. 이슈를 통해 화제가 된 팀이 유튜브에 쌓아둔 콘텐츠로 관심을 이어가는 것은 마치 아이돌 그룹이 팬덤을 늘려가는 것과 비슷하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TV를 중심으로 활동한 40대 중반의 연예인이 TV 바깥에서 누군가 화제가 되는 과정을 이해하면서 유튜브 시대에 어울리는 리얼리티 쇼를 만들었다. 송은이와 김신영이 일본에 가는 에피소드나 멤버들의 연습 과정을 담은 영상들은 지금 유튜버나 아프리카 BJ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유튜브와 페이스북 영상의 어떤 감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크기와 스타일이 제각기 다른 폰트들이 툭툭 튀어나오고, 종종 얼굴이 잘려나간 영상이 편집되지 않고 나오기도 한다. 그만큼 거칠고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리얼하며 즉흥적인 느낌이 강조되고, 편당 5분 내외의 러닝타임과 함께 누구나 쉽게 다가설 수 있다. 그 결과 셀럽파이브는 걸그룹의 제작 과정을 ‘언니들의 슬램덩크’ 같은 리얼리티 쇼로 제작하되, 그것을 지금 유튜브의 스타일 안에서 뒤집어버린다. 그 결과 세 개의 장르적 특성을 디테일하게 따라가면서 갖고 놀아버렸고, TV와 유튜브 어디서든 시선을 끈다.
송은이가 스스로 전환점을 만들어내고, 셀럽파이브를 통해 다른 개그우먼들까지 부각시키는 과정은 마치 MBC에브리원 ‘무한걸스’의 역사를 다시 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한걸스’는 MBC ‘무한도전’의 여성 버전으로 제작됐다. 그만큼 ‘무한도전’의 틀을 여성 출연자에 맞춰 바꾸는 것을 기본으로 했고, 당시 프로듀서가 아닌 플레이어였던 송은이의 역할 역시 그 안에서 출연자들을 조율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반면 셀럽파이브의 경우에는 여성 예능인들이 또 다른 여성들의 분야인 걸그룹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끌고 갔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여성 예능인의 현재와 그들이 현실을 바꿔가는 과정이 담긴다. 누가 제작을 하느냐가 얼마나 많은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다. 과연 TV가 이 새로운 예능에 대해 자리를 내어주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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