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감빵생활', 슬기롭게 사는 남자들

아이즈 ize 글 박희아 입력 2018. 1. 3. 09:02 수정 2018. 1. 8.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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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글 박희아

남자 교도소를 배경으로 하는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tvN ‘응답하라’ 시리즈의 신원호 감독이 연출했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하숙집에 모인 학생들이나 동네 이웃을 가족처럼 가까운 관계로 설정했던 그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교도소에 모인 남자들이 또 하나의 가족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재소자인 장발장(강승윤)은 민철(최무성)을 “아부지”라 부르고, 이들을 관리하는 팽부장(정웅인)은 재소자들을 돌보는 형 같은 존재다. 여동생을 성폭행하려 했던 사람을 과잉방어 했다는 이유로 수감된 제혁(박해수)의 변화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전달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처음에는 재소자들과 섞이지 못했던 그는 유명 프로야구 선수인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하려는 교도소장에게 부탁할 것이 있으면 “형처럼 생각하니까”라고 먼저 미끼를 던진다. 부패와 폭력의 온상지였던 목공소의 반장이 된 뒤에는 재소자들이 원하는 편안한 분위기의 작업 환경을 유도하기도 한다. 자신의 유명세를 거부하지 않고 가까워진 재소자들을 챙기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부터, 그의 교도소 생활은 슬기로워진다.

제혁의 이런 행동은 재소자들이 그와 가족이나 다름없는 끈끈한 정서적 교류를 맺는 것으로 돌아온다. 제혁이 돈이 없어 어머니의 수술을 진행할 수 없는 구치소 동기 법자(김성철) 몰래 수술비를 전달한 뒤, 법자는 그의 재활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유명세가 있는 제혁을 목공소 반장으로 추천, 보다 좋은 작업환경을 만들려고 한 고박사(정민성)는 다른 교도소로 이감되면서 꼼꼼하게 기록한 제혁의 연습일지를 작성한다. 마음씨도 좋고, 심지어 슬랩스틱 코미디가 특기일 만큼 허술하기까지 한 유명 스타와 형, 동생 사이가 된 그들은 열악한 교도소 안에서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해나간다. 죄인이 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도 가족 같은 관계가 생겨날 수 있다는 따뜻함은 ‘응답하라’ 시리즈의 구성원들이 이해관계를 초월해 서로를 아껴주던 모습과 겹치고, 여기서 나오는 따뜻한 감정들은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보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제작진의 의도가 무엇이든,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아이러니하게도 사적인 커뮤니티가 가진 문제를 동시에 보여준다. 제혁과 고박사에게 교도소 내 불이익을 빌미로 협박하며 언론 인터뷰를 제안했던 나 과장(박형수)은 재소자 모두가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는 쉽게 넘길 수 있는 일도 “원칙대로 한다”며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 하지만 제혁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그에게 제대로 맞서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방식이 그리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족 같은 정으로 해결하는 많은 일들은 교도소의 룰을 벗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교도소장이 언론을 비롯한 외부인들을 상대로 “김제혁 선수와는 형, 동생 같은 사이”라고 말할 때 나과장이 대놓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는 것은 상징적이다. 그는 교도소의 원칙을 무시하는 관계와 그로부터 생기는 이권을 경멸한다. 또한 교도소장을 타박하고 중구난방인 교도소 예산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는 교도소가 제대로 굴러가도록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정에 기대는 인물들 사이가 부각될수록, 나 과장은 그들을 방해하는 인물처럼 여겨진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교도소에서도 인간적인 정이 흐른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역설적으로 그것이 얼마나 원칙을 어기는 것이 되는지 보여준다.

유 대위(정해인)의 에피소드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가진 모순을 보여준다. 유 대위는 교도소처럼 남자들이 모여 있는 군대에서 후임을 때려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악마라 낙인찍힌다. 그의 형은 사건 이후 뿔뿔이 흩어진 부대원 열한 명을 만나며 진실을 밝혀줄 것을 부탁하지만 누구도 그를 도우려 하지 않는다. 유 대위에게 살인 혐의를 뒤집어씌운 가혹행위 가해자가 정계 유력 인사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원칙이 무너지고, 권력에 따라 진실이 은폐된 커뮤니티 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물론 권력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인간미 넘치는 스타와 가혹행위를 가한 군인을 한데 묶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제혁이 자신의 유명세를 악용할 마음만 먹었다면 그와 관계된 재소자들의 상황은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원칙이 무너진 사회에서 모든 것은 결국 권력을 가졌거나, 그에게 접근할 수 있는 관계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결정된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억울한 입장에 처한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제혁이나 팽 부장처럼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이 선하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그래서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본의 아니게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성폭력과 그에 대한 과잉 방어 논란, 군대 가혹행위, 사내 비리를 무고한 직원에게 몰아붙이는 모습 등 사회적 문제들이 소재로 쓰이고, 이 과정에서 사회의 불합리한 모습들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역시 가족 같은 구성원 간의 정이다. 원칙과 합리보다 그 사람이 따뜻한 정이 있는지 여부가 캐릭터의 선악 또는 호오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원칙을 어겨서 생긴 문제에 대해 역시 원칙이 아닌 사적 관계가 가진 힘을 통해 해결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족과 같은 정이라 말한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이런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들이 남자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교도소, 군대, 조폭 등 이 드라마와 관련된 커뮤니티는 모두 남성 중심으로 이뤄진다. 또한 제혁에게 여동생, 어머니, 여자친구는 자신이 지켜야 할 존재고, 고박사가 회사의 비리를 뒤집어쓴 것 역시 아내와 딸이 편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유명한 조폭이었던 민철은 조직 내에서 유독 자신을 따르던 소년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이들은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을 가족이라 생각하고, 그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가부장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모인 사회는 원칙이 아닌 권력과 사적인 관계로 돌아간다. 제혁처럼 그 힘을 슬기롭게 활용하면 여러 사람의 생활이 편해지고, 반면 유 대위의 일처럼 악행으로 이어지는 일도 있다. 이 커뮤니티에서 여자는 선이든 악이든 전혀 존재하지 않고, 오직 보호받거나 제혁의 여동생처럼 성폭행 대상이 된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한국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보여주면서, 그것이 남성 중심의 사적 관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신원호 감독이 이것을 의도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응답하라’ 시리즈부터, 그는 구성원들의 사적 관계가 가족과 같은 정을 갖는 것을 하나의 이상으로 제시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제혁을 비롯한 재소자들의 행동 역시 부정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다만 신원호 감독은 꼼꼼한 관찰자로 보인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도 시대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데 공을 들였던 그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재소자들의 ‘슬기로운’ 삶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을 드러낸다. 가족 같은 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사이, 오히려 한국 사회가 가진 문제점들이 동시에 드러난다. 그래서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보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캐릭터들의 슬기로운 생활을 즐겁게 볼 수도 있고, 반대로 폐쇄적인 커뮤니티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관찰하며 문제점에 대해 인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바라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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