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집중> 손석희 시절로? 변창립 아나의 반성과 다짐

이영광 입력 2017. 11. 3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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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433] <시선집중> 새 진행자, 변창립 아나운서

[오마이뉴스 이영광 기자]

"지난 17년 동안 쉼 없이 달려왔던 저희 <시선집중>이 70여 일간 멈춰 섰습니다. 음악방송으로 대체된 것입니다. 국민의 소중한 자산인 전파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길고 복잡한 이야기로 핑계 대거나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공영방송 MBC를 지키지 못하고 파행을 거듭한 가장 큰 책임은 저희 MBC 구성원 모두에게 있음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좋은 방송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변창립 아나운서가 지난 11월 20일 <시선집중>을 시작하며 했던 오프닝 멘트 중 일부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기 전 MBC는 말 그대로 '만나면 좋은 친구'였다. 시민들은 드라마와 예능을 통해 울고 웃었고 뉴스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변창립 MBC 아나운서
ⓒ 이영광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MBC 이미지는 급전직하로 떨어져 9년이 지난 지금 '일베 방송'이란 소리까지 들었다. 9월 4일, MBC 구성원들은 파업에 돌입했고 72일 만에 김장겸 사장이 해임되었다. 파업으로 음악만 나오던 MBC라디오는 11월 20일부터 정상화가 되었고 MBC 라디오 간판 시사 프로그램인 <시선집중>의 임시 진행자로 변창립 아나운서가 발탁되었다.

사실 변 아나운서는 내년 안식년에 들어가기 때문에 한 달 열흘 남짓밖에 진행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진행 제의를 승낙한 이유가 궁금해 28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변 아나운서를 만났다. 다음은 변 아나운서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내년 안식월 앞두고 <시선집중> 진행 맡은 이유

- <시선집중>을 진행한 지 오늘(28일)로 9일째다. 지난 8일 어떻게 보냈나?
"바빴죠(웃음). 오랜만에 하는 방송인데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시사 정보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됐으니 이것저것 할 게 많았다. 사실 방송 준비에 신체적인 적응이나 준비도 필요한데 그런 건 생각도 못했고 최근 시사 이슈들, 또는 국제 정세와 관련된 자료를 검색하고 그것들을 소화하느라 바빴다."

- 아침 출근 시간 대 시사 프로가 많아서 그런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을 것 같은데.
"당연히 있다. MBC 라디오가 두 달여 파업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방송되지 못했고 지난 수년 동안 공정하지 못한 방송을 해왔기 때문에 신뢰를 많이 잃었을 거다. 신뢰나 청취율을 잃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그걸 회복하는 건 쉽지 않다. 오랜 시간 공들여 하나하나 쌓아 올려가야 한다. 경쟁 프로를 의식하며 프로그램을 진행하지는 않을 거다. 제가 맡아서 진행하는 동안 최대한 기본을 하나하나 쌓아서 다음 진행자가 이 프로그램을 제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도록 노력할 거다."

- 내년에 안식년인 것으로 안다. 사실상 한 달 열흘 정도밖에 진행을 못 한다는 건데, 그럼에도 제의를 수락한 이유는?
"사실 방송은 5년 전까지 꾸준히 했었고 더 이상 욕심을 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방송과 관련된 일은 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저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아나운서국 재건이라든지 조직 정비, 교육 등에 참여하고 제가 가진 경험이나 노하우를 전해 주고 안식년 들어가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었다.

헌데 라디오국 PD들이 애를 써서 <시선집중> 프로그램 정상화 기틀을 만들어 놓았는데 외면하기 어려웠다. 처음엔 개인적인 이유를 들어서 고사를 했는데 결국, 제대로 된 방송을 빨리 청취자들께 보내드려야 한다는 큰 뜻에 개인적인 사유는 접었다. 힘든 상황에서 방송을 정상화 시키려고 애썼던 라디오국 동료들의 노력과 거기에 발맞춰 선배가 진행해야 한다는 아나운서국 후배들의 부탁을 저버릴 수 없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가 총파업을 잠정 중단하고 업무 복귀를 시작한 11월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 사옥 로비에서 부당 전보로 아나운서국을 떠났던 변창립(가운데), 박경추(오른쪽 두번째) 아나운서가 본연의 업무를 하기 위해 출근하자, 동료 아나운서들이 안부를 물으며 반기고 있다.
ⓒ 유성호
- 5년 만에 마이크를 잡는 거라 떨렸을 것 같다.
"그렇다. 긴장했다. 겉으로 내색 안 하니까 편안한 긴장으로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방송은 엄청난 집중을 요하는 작업인데 최고의 방송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긴장도 많이 하고 많은 걸 고민하게 된다. 그래도 첫 방송은 큰 실수 없이 저희가 준비한 내용을 청취자에게 전달해 드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 처음 방송할 때도 생각났겠다.
"생각나죠. 처음 방송은 'MBC 문화방송입니다'로 짤막한 것이었다. 콜사인이라고 하는데 '현재 방송을 듣고 계신 채널은 문화방송입니다'를 알려드리는 짤막한 고지 방송부터 시작했다.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 수 십 가지로 이렇게 하면 좋을지 저렇게 하면 좋을지 연습했다. 그러다가 큐 싸인 들어오면 제가 뭐라고 방송했는지 방송 멘트도 전혀 기억 못 하던 그런 기억이 난다."

- 첫 방송 오프닝 멘트가 지난 MBC에 대한 사과였다. 오프닝 멘트에 신경을 많이 썼을 것 같다.
"방송하기로 한 날부터 고민한 게 오프닝 멘트였다. 제작진하고도 같이 고민했는데 결국 평소 제 소신하고 맞닿아 있었던 것 같다. 저는 이번 MBC 정상화 가동이 온전히 저희 힘만으로 시작됐다고 생각 안 한다. 국민이서 촛불 시민 정신으로 어려운 부분들을 해결해 주셨고 그 토대를 마련해 주셨기 때문에 저희는 그 위에 쓰러진 MBC의 벽돌을 올리는 형국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시민들께 먼저 사죄를 드리고 싶었다. 사과의 말씀을 먼저 드리고 다음에 고맙다는 말씀을 드릴까 하다가 그건 아직 아닌 것 같더라. 저희가 아직 해놓게 없잖아요. 고맙단 말씀을 드릴 자격이 아직은 없다고 생각해서 사죄하고 사죄하자란 뜻으로 방송 전날 밤 12시까지 쓰고 또 고쳐 썼다."

<시선집중>... 손석희와 신동호, 변창립의 차이

- <시선집중>은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의 이미지가 크다. 물론 사이에 다른 진행자가 있었긴 하지만 그래도 부담이 있었을 것 같은데.
"아마 손 선배가 하던 프로를 직접 받았다면 부담이 있었을 것 같다. 워낙 오랫동안 시사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셨고 우리나라 최고 방송인 중 하나일뿐더러 저에겐 직속 선배이기도 하고. 후배들 방송 잘 못 하고 버벅거리면 가차 없이 혼내거든.

하지만 후배 진행자가 방송을 한 4년 정도 진행했다. 여러 가지 평가가 가능할 수 있겠지만 손 선배 방송의 신뢰도나 청취율 면에서 좀 떨어지는 침체기를 겪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해서든 손석희 선배가 진행했던 전성기 프로그램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하나하나 벽돌을 쌓아 올리고 있다."

 MBC <변창립의 시선집중> 새 진행을 맡은 변창립 아나운서.
ⓒ MBC
- 첫 방송 전날 최기화 사장 직무대행이 <시선집중> 시간에 음악 내보내라는 지시를 해 방송 못 할 뻔했던 걸로 아는데.
"첫 방송 전날 갑자기 담당 PD에게 연락이 왔다. '다시 음악 방송으로 전환해야 할 것 같다. 사장 직무대행을 맡은 최기화씨가 제작진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원래 음악방송으로 진행하기로 했고 나머지 프로그램만 정상화하기로 했는데 왜 <시선집중>이 방송되고 왜 변창립 아나운서냐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정식 공문을 통해 절차를 밟으라는 얘기를 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때부터 다시 바빠졌다.

라디오 비상대책위에서 일요일 오후 긴급하게 회의가 진행됐고 담당 PD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저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만약 음악방송이 되면 최악의 경우 음악만 내보낼 수는 없지않나. 그래서 제가 담당 PD에게 '그럼 내가 DJ 한다. 아침 시간대 표준 FM DJ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새로운 걸 보여주자. MBC 현 상황과 그동안 있었던 얘기를 중간중간 적절한 음악을 내보면서 하는 '시사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라고 농반진반으로 저희끼리 말했다.

그러던 차에 저녁 다되어서 다시 한 번 설득 작업을 한 것 같다.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서 <변창립의 시선집중>이 월요일부터 방송한다는 게 다 알려졌는데 만약 음악 방송으로 나가게 되면 방송 파행의 모든 책임은 사장 직무대행에게 돌아갈 텐데 감당할 수 있겠냐고 반박한 거다. 더 이상 말이 없었다더라."

- 첫 인터뷰이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예은이 아빠 유경근씨였다.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유경근 위원장을 첫 인터뷰이로 선정한 것은 의도적이지 않았다. 기획 회의와 제작 회의할 때 자연스럽게 그때의 가장 시사적인 흐름 또는 뉴스의 집중을 받는 인물을 하나씩 떠올려서 방송 가능성을 타진하는데 그날 모든 스태프들이 자연스럽게 마음이 통한 것 같다. 자연스럽게 결정된 거다.

유 위원장 같은 경우 <시선집중>에 한 번도 모시지 못했다. 그리고 세월호 때 MBC 전 채널이 제대로 보도하지 못해 유가족들에게 많은 질타도 받았다. 그 빚은 어떤 형태로든 남아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저희 제작진 마음이 그쪽으로 모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 아이템 선정은 어떻게 하나?
"매일 기획 회의와 제작 회의한다. 수시로. 밤 11시도 좋고 계속 연락이 온다(웃음). 휴대폰 머리맡에 두고 지낸다. 24시간 회의 체제다. 시시각각 뉴스가 바뀌고 시사도 바뀌고 국제정세 바뀌고 그러면서 인터뷰를 준비했던 분이 다급한 상황으로 도저히 인터뷰 응할 수 없다고 하거나 '타사에서 이런 아이템을 준비한다는 데 이와 관련해서 우리도 보강해야 하지 않나'하는 의견 나오면 또 관련 자료 찾아야 되니까."

- 상암에선 첫 방송이었다. 아무래도 상암은 낯설 것 같은데.
"저는 정동 MBC 시절에 입사했기 때문에 정동에서 방송을 시작했다. 그리고 여의도 사옥으로 건너갔다. 거기로 건너갔을 때 여의도 사옥도 낯설었다(웃음). 그러나 거기서 이런저런 방송 하다 보니 정이 들었다. 상암에 오게 된 시점이 MBC가 정상적인 기능이 작동하던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상암이라는 곳이 마뜩찮았죠.

그러나 벌써 3년 반이 지났고 이제 얼마나 더 진행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지막에 정상화 된 MBC에서 고맙게도 마무리를 해가는 과정이라 상암에 대한 기억도 좋게 남지 않을까 생각한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잖아요."

"제대로 된 MBC 보여드리겠다"

- 올해로 MBC 입사 34년차다. MBC의 영욕을 함께 하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언론장악으로 인해 망가져서 외면 받는 MBC를 생각하면 어떤가.
"힘들었다. 망가지고 있고 그걸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에 굉장히 괴로웠다. 그래서 한때는 탓을 많이 하기도 했고 분노하기도 했고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저를 괴롭히고 있더라. '이러다 안 되겠다. 나마저 무너지면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게 작동했다고 할까? 조금씩 추스르기 시작했다. 결코 쉽지 않은 세월이었다."

- 김장겸 전 사장 등 경영진이 핸드폰을 분쇄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던데.
"그동안 정권의 힘을 등에 업고 MBC를 파괴하고 자기들 멋대로 초법적인 행동을 했던 경영진들이 지금 겁을 낸다는 생각을 했다. 두려워서 이것저것 흔적 지우기에 나선 거다, 그 과정에서 증거인멸 교사까지 한 셈이고. 그들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을 거다. 아마 후회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 MBC아나운서 27명 업무거부 선언 MBC아나운서 27명이 김장겸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 사퇴를 촉구하며 8월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앞에서 ‘방송거부-업무거부 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변창립 아나운서.
ⓒ 권우성
-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12명의 아나운서가 퇴사했다. 최고참 아나운서로서 후배 아나운서들의 퇴사를 어떻게 봤나?
"얼굴을 제대로 못 봤다. 보통 사표 낸다고 하면 형식상이든 선후배 간 정 때문이든 한 번쯤 만류하잖나. 그런 거 없이 '낼 거면 빨리내'라는 냉담한 반응에 상처를 받아 저를 찾아온 경우가 많았다. 웬만큼 결심을 굳히고 저를 찾아오더라. 왜냐면 그만둔다고 하면 말릴 걸 다 알거든. 미안했다. 후배들 지켜주지도 못한 못난 선배가 되어 앉아있다는 생각 때문에."

- 상황을 다 이해하는데도 잡고 싶었나?
"저에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 없지만, 후배들에게는 시간이 남아있고 조금만 견디면 지나간 세월에 대한 보상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방송은 할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했는데 설득이 안 됐다. 너무 암울했고 중요한 건 그 친구들에게 가장 중요한 방송 절정기라고나 할까? 가장 중요한 시기를 고통 속에서 허송세월했지 않나. 그건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들의 떠나겠다는 결심을 돌리지 못한 게 안타깝다."

- 앞으로 각오 한 마디 해달라.
"이른 시일 안에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된 MBC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얼마 남지 않은 제 방송 여정을 최선을 다해 쏟아 붓겠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만나면 좋은 친구가 여러분 곁으로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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