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톡] CJ '군함도' 사태, 70년 전 할리우드로 역행

황서연 기자 2017. 7. 29.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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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CJ CGV 서정 대표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군함도'가 한국 극장가를 점령했다. 이 사실이 딱히 놀랍거나 새롭지는 않지만 이 영화가 개봉 첫날 세운 여러 '기록'들에는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26일 개봉한 '군함도'(감독 류승완·제작 외유내강)는 이날 2027개 스크린을 차지해 1만174번 상영, 상영 점유율 55.2%를 기록하며 개봉 첫날 무려 97만922명이란 사상 초유의 오프닝 최고 신기록을 경신했다. 이어 이튿날 100만 관객, 사흘 째는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분명 놀라운 흥행 추이를 보이고 있지만, 이는 역대 최악의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야기했다.

한국 영화 시장에서 와이드 릴리즈(wide release) 개봉 방식을 택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지 오래다. 와이드 릴리즈란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가 매겨지기 전 최대한 많은 상영관을 확보해 관객 수를 늘리고, 이를 통해 입소문을 타고 추가 상영관을 확보하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 그리고 이 방식은 수년간 여러 천만 영화를 낳으며 검증을 거친 전략이 됐다. 하지만 이토록 노골적인 선공은 유례가 없었다. 스크린 수가 2000개를 넘은 것은 '군함도'가 처음이다.

지난 2014년 1602개 스크린을 확보한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를 시작으로 지난 3년 간 최다 스크린 수 기록은 꾸준히 경신됐다. 전체 스크린 개수가 늘어난 데다가 제작·배급사들이 갈수록 공격적인 상영관 확보 전쟁을 벌이며 극장가 구조가 기형적으로 변했기 때문. 그럼에도 앞서 대형 영화들이 이 같은 방식으로 인한 관객 몰이와 높은 예매율을 통해 꾸준히 스크린 수를 늘려왔다면, '군함도'는 출발 선상부터 압도적인 물량 공세를 펼친 것. 이는 그동안 독과점 논란을 놓고 "사전 예매율을 바탕으로 관객의 수요에 따라 많은 관을 배정한 것"이라는 극장 측의 주장을 감안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군함도' 독과점은 수요를 늘리기 위해 공급을 억지로 늘린 꼴로써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물론 '군함도'의 스크린 수는 개봉 첫날 총 5435개(교차상영 포함)였고, '군함도'의 2027개 기록은 전체 극장가의 절반에 못 미치는 낮은 수치라고 항변할 순 있다. 그러나 '군함도'가 프라임 타임 시간대를 점령하고, 경쟁작들은 조조, 심야 등 한적한 시간대로 밀려난 작금의 사태를 보면 '군함도'의 스크린 점령을 부인할 수 없다.

현재 한국 영화 산업은 해외 수출 등을 통해 수익을 내거나, IPTV 등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영화 수익 구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상영관 매출이다. 멀티플렉스 극장은 모두 큰 영화 한 편에 매달려 단기간에 바짝 관객들을 끌어들여 수익을 낸다. 때문에 제작사도 배급사도 영화관도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관객들을 끌어 모아 흥행 한 방을 터트리려 한다. 한국영화 외화 할 것 없이 대형 작품이라면 스크린을 몰아주고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거대한 상영관을 잡아먹을 텐트폴 영화들이 개봉일을 고지하면 작은 영화들이 '알아서' 피하는 것이 영화 시장 나름의 공생 방법이 됐고, 큰 영화들의 입장에서는 동 시기 경쟁작이 줄어들어 스크린 독과점이 더욱 수월해졌다. 덕분에 중소 영화들은 설 자리를 잃고 극장가의 회전율은 더욱 빨라졌다. 순위권 흥행작 이외에는 한 달 이상을 버티는 영화를 찾기가 어렵다.

특히나 이러한 상영 구조의 문제점은 국내 영화시장의 가장 큰 특징인 멀티플렉스의 제작·배급 수직계열화와 만나 더욱 심화된다. 수직계열화란 배급과 상영을 모두 한 회사가 맡고 있는 상황을 뜻한다. 자사가 배급하는 영화를 스크린에 걸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니 여타 영화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제왕적 권위를 누리고 있는 셈.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3대 멀티플렉스 극장이 모두 배급을 겸업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상영관이 적은 메가박스, 롯데시네마를 차치하면 CJ CGV가 영화 시장에 끼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그리고 대기업 CJ그룹의 계열사 CJ엔터테인먼트와 CJ CGV는 논란의 중심에 선 '군함도'의 배급과 상영을 모두 맡고 있다. 이번 사례가 국내 영화시장이 겪고 있는 수직계열화 문제의 심각성과 영화 산업 전반을 잠식한 대기업의 독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유다.

'군함도'는 제작 단계부터 숱한 화제를 낳았다. 특히 철저한 고증을 위해 실제 섬의 3분의 2 가량 규모의 세트를 짓는 등 한국영화 사상 초유의 제작비를 들이면서 손익분기점이 700만 명까지 올라갔다. CJ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본의 논리에 따라 이에 준하는 수익을 내야 하는 상황. 유례없는 '군함도'의 스크린 점령은 어쩌면 예견된 수순이었다.


최근 국회에서 대기업의 상영·배급 규제에 따른 스크린 독과점 해체 등을 주요 골자로 한 영비법(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다. 여기에 직격타를 입을 수밖에 없는 CJ다. 실제 최근 열린 2017 중반기 CGV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에서 CJ CGV 서정 대표는 "한국 영화 산업의 수직계열화가 그렇게도 문제냐"며 반문한 것은 물론, 영비법의 근간이 되는 1948년 미국 파라마운트 판결을 예로 들며 "한국 영화산업이 규제 속에서 위축돼 성장이 둔화될지, 아니면 글로벌화로 갈지 기점에 서있는 상황에서 70년 전 판결로 현재의 영화산업을 재단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지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파라마운트 법안을 구시대 사문화된 법안으로 치부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70년 전 할리우드에는 배급, 상영뿐만 아니라 배우들까지 모두 한 회사에 소속시켜 제작까지도 독점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었다. 이후 할리우드는 파라마운트 판결을 통해 수직 구조를 해체하고 다양한 영화들을 생산하며 독립영화의 기틀을 닦았기에 지금과 같은 세계 영화시장의 중심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반면 국내 시장에서 '군함도'가 사상 초유 스크린 수로 독과점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지금, 이것이 정말 시장 논리에 의한 '충분한 공급'일까. CJ는 과연 지금의 충무로를 70년 전 할리우드보다 나은 상태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나.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영화 '군함도' 포스터, CGV,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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