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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변호인'이 CJ 영화라고요?

라제기 입력 2016.11.18. 13:59 수정 2016.11.19. 11:39
영화 '변호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소재로 삼아 1,137만 관객을 모았다. NEW 제공

영화 ‘변호인’이 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다시 입에 오르고 있습니다. 청와대가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에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라고 압박을 가했다는 보도와 함께 거론되고 있습니다.

18일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2014년 초부터 청와대의 압박 강도가 갑작스레 높아졌고, 그 이유는 CJ가 ‘변호인’에 투자해서라고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소재로 삼은 ‘변호인’ 때문에 노 전 대통령 추모 열기가 뜨거워졌고 청와대의 심기도 불편해졌다는 것입니다.

CJ엔터테인먼트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광해, 왕이 된 남자’(‘광해’)를 개봉해 1,000만 관객을 모았습니다. 혼수상태에 빠진 개혁 군주 광해를 대신해 외모가 판박이인 광대가 선정을 펼친다는 내용이 노 전 대통령의 삶을 반추하게 했고,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의 지지율 상승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이 부회장 2선 퇴진에 대한 청와대의 압박에는 ‘광해’와 tvN 코미디프로그램 ‘SNL 코리아’의 정치풍자 코너 ‘여의도 텔레토비’가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말들이 있습니다. CJ가 ‘변호인’을 통해 권력 상층부의 심기를 건드렸다면 이 부회장 퇴진과 관련한 여러 해석이 설득력을 얻을 만합니다. 이 부회장은 영화와 방송, 음악, 공연 등 CJ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총괄해 왔으니까요.

하지만 ‘변호인’이 정말 CJ 영화일까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변호인’의 투자배급사는 NEW(뉴)입니다. ‘7번방의 선물’(2013)과 ‘부산행’(2016) 등을 흥행시키며 2010년대 충무로의 신흥 강호로 부상한 회사입니다(뉴는 ‘변호인’ 개봉 뒤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습니다). 충무로에서 ‘변호인’을 CJ 영화로 인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청와대는 ‘변호인’을 CJ 영화로 생각하고 괘씸하게 생각했을까요.

상업영화 한 편에는 여러 투자자가 참여합니다. 제작비의 많은 부분을 대는 ‘메인 투자자’가 있고, 적은 돈을 들여 투자 수익을 노리는 ‘부분 투자자’들이 있습니다. CJ엔터테인먼트와 NEW 등 투자배급사들은 주로 메인 투자자로 영화에 투자하고 이를 배급해 극장에 개봉시킵니다. 부분 투자자들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창업투자사와 개인 투자자, 펀드 등이 해당됩니다(물론 이들이 경우에 따라 메인 투자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변호인’에는 CJ그룹 계열사 CJ창업투자(CJ창투)가 투자했는데 청와대는 이 점을 주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변호인’ 제작에 돈을 댔으니 어떤 정치적 꿍꿍이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창투사는 손실 위험을 줄이면서 최대한 이익을 얻고자 하는 속성 상 여러 영화에 투자를 집행합니다. 투자배급사를 가리지 않고 돈 될 영화에 두루 투자하는 것이지요.

영화 '변호인'. NEW 제공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CJ창투가 2008~2013년 투자한 한국영화는 73편입니다. 1년에 14.6편 꼴입니다. 여기에는 ‘의형제’(2009.쇼박스), ‘포화 속으로’(2009.롯데엔터테인먼트), ‘은교’(2012.롯데엔터테인먼트), ‘도둑들’(2012.쇼박스) 같은 영화도 포함돼 있습니다. 한 영화인은 “‘변호인’이 CJ 영화라면 다른 투자배급사의 상업영화 상당수가 CJ 영화가 되는 꼴”이라고 쓴웃음을 짓습니다. 어느 영화인은 이런 해석까지 내립니다. “CJ에 대한 분노가 강하다 보니 CJ와 조금이라도 연관된 영화라면 다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고.

‘변호인’에 부분 투자를 한 뒤 CJ창투는 2014년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로 이름을 바꿉니다. CJ그룹에서 벗어나지 않았는데 기이하게도 CJ란 상호를 지우려 한 의도가 엿보입니다. 영화계에서는 ‘변호인’에 투자했다가 청와대의 눈밖에 나면서 이름을 바꾼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돌았습니다. 문화융성을 외쳐 온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를 둘러싼 여러 의심쩍은 일들이 벌어지니 더욱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 정말 영화를 영화로 볼 수는 없는 걸까요.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mailto:wenders@hankookilbo.com)

※사족 아닌 사족

박근혜 대통령 일가와 CJ가 영화로 처음 악연을 맺은 것은 2005년. 10.26 사건을 소재로 한임상수 감독의 블랙코미디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 CJ엔터테인먼트가 부분 투자와 배급에 나서면서부터입니다. 당시 박지만씨가 “아버지(박정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법원이 일부 장면을 검은 화면 상태로 상영하라고 결정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CJ엔터테인먼트는 정치적 파장을 예상하고 부분 투자와 배급을 철회해 ‘그때 그사람들’의 제작사였던 MK픽쳐스가 큰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그때 그사람들’은 2005년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대됐고,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임 감독은 ‘하녀’(2010)와 ‘돈의 맛’(2012)으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연달아 진출하게 됩니다. 한국에선 정치적 풍파를 겪은 작품이 해외에선 인정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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