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음악

'슈스케' 세번 떨어지고도.. 인디 볼빨간의 '음원 반란'

양승준 입력 2016.09.28. 04:42 수정 2016.10.0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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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포커스] 기획사 문전박대 등 설움 딛고 차트 역주행
여성 듀오 볼빨간사춘기는 솔직하면서도 감성적인 가사로 10~30대 여성들에 특히 인기가 많다. 안지영(왼쪽)은 "여중과 여고, 여대를 나와 여성적인 감성이 더 곡에 드러나는 것 같다"며 웃었다. Mnet 제공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연속 Mnet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예선에서 떨어졌다. SM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가요 기획사에 문을 두드려보기도 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반 친구로 만나 가수의 꿈을 키웠던 두 소녀 중 한 명은 결국 음악과 상관 없는 대학 전공(보건행정학과)을 택해 취업을 준비했다. 음악에 대한 미련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대학 입학 후 운 좋게 인디 레이블(쇼파르뮤직)에서 계약 제의가 들어와 학업을 병행하며 곡 작업을 쉼 없이 했다. “매주 최소 한 곡씩 곡을 써 와라”는 회사의 특명이 떨어져서다. 대학 새내기였던 두 소녀는 캠퍼스의 낭만을 뒤로 하고 꼬박 1년 6개월 동안 80곡이 넘는 곡을 쓰고 또 썼다. 인디를 넘어 요즘 가요계 ‘대세’로 떠오른 여성 듀오 볼빨간사춘기의 안지영ㆍ우지윤(21) 이야기다. 26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를 찾은 안지영은 “시장님이 시를 빛내줘 고맙다고 추석 연휴 직전에 전화를 주셨다”며 웃었다. 볼빨간 사춘기는 경북 영주시에서 결성됐다.

임창정과 아이돌 발목 잡은 ‘복병’

인디 뮤지션 볼빨간사춘기는 가요계 ‘복병’이다. 지난달 29일 낸 1집 ‘레드 플래닛’ 타이틀곡인 ‘우주를 줄게’는 멜론과 지니 등 주요 음원 차트에서 26~27일 이틀 연속 일간 차트 1위를 차지했다. 가수 임창정과 걸그룹 에이핑크의 신곡을 제치고, 인지도 없이 음악의 힘으로 일군 ‘인디의 반란’이다. 국내 6개 음원 사이트의 소비량을 집계하는 가온차트의 최태영 과장은 “여성 인디 음악인이 주요 차트 정상을 차지한 건 처음 본다”라고 의미를 뒀다. 홍익대 인근에서 활동했던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과 혁오, 남성 듀오 10cm 등이 음원 차트 1위를 한 적은 있지만, 인디 여성 음악인이 차트 정상을 밟은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볼빨간사춘기에 대한 음악 팬들의 관심이 높아지다 보니 이들의 새 앨범 속 다른 곡 ‘나만 안 되는 연애’도 차트 10위~20위권에 머물며 주목 받고 있다.

볼빤간사춘기의 우지윤(오른쪽)은 수줍음이 많아 '볼빤간' 역을, 안지영(왼쪽)은 어디로 튈 지 몰라 '사춘기' 역을 각각 맡는다. 쇼파르뮤직 제공

“ ‘여자 10cm’”…톡톡 튀는 노랫말로 ‘역주행 아이콘’으로

볼빨간사춘기는 ‘차트 역주행’의 새 주인공이다. 2년 전 낸 노래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 해’로 지난달 각종 차트 정상을 휩쓴 한동근처럼 볼빨간사춘기도 앨범을 낸 지 한 달이 지나서 뒤늦게 빛을 봤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에서 마니아들 중심으로 입 소문을 탄 뒤 방송에 나와 더 폭 넓게 시선을 이끈 화제 방식도 비슷하다. 대형 아이돌 기획사 소속이 아닌 ‘이름 없는’ 신인이 신곡을 낸 뒤 1주일 안에 차트 톱50 위에 이름을 올리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음원 소비자들이 새 음악을 찾아서 듣기 보단 톱50에 오른 곡 위주로 돌려 듣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음원 소비자의 견고한 보수성을 깨고 신인의 음악을 찾아 듣게 했다는 점”(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연구위원)에서 볼빨간사춘기가 주목 받고 있는 것이다.

볼빨간사춘기는 “‘여자 10cm’”(이연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 작가)로 통한다. ‘아메리카노’를 구성지게 부른 10cm처럼 시시콜콜하면서도 솔직한 가사가 돋보인다. ‘너도 다른 남자들이랑 똑같아’라며 ‘못된 말만 골라 네게 전송해. 사실은 나 지금 너네 집 앞이야’(‘싸운날’)라며 연애담을 꾸밈 없이 노래해 10~30대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기반으로 랩을 버무린 ‘어쿠스틱 K팝’ 공식(통기타 선율에 힙합… ‘어쿠스틱 K팝’ 뜬다ㆍ본보 5월7일자 12면)을 따라 대중성을 높인 게 특징이다. 대학생 민준호(26ㆍ남)씨는 볼빤간사춘기의 매력으로 “상업적이지 않은 풋풋함”을 꼽았다.

‘볼파란 갱년기?’… ”모태솔로인데요”

음악처럼 볼빨간사춘기는 철부지 같다. “모태솔로라 사랑 노래인 ‘우주를 줄게’에서 랩을 쓰는 게 어려웠다”는 게 우지윤의 말이다. 안지영은 어디로 튈 지 몰라 팀에서 ‘사춘기’역을 맡았고, 우지윤은 수줍음이 많아 ‘볼빨간’ 역을 책임진단다. 고등학생 때 기숙사 생활을 하다 숙소를 ‘탈출’하는 등 혹독한 사춘기를 치렀다는 안지영은 “사춘기의 솔직하고 순수한 감성을 노래하고 싶어 팀 이름을 볼빨간사춘기로 지었다”며 “고등학생 때 2주 동안 고민해 만든 것”이라고 전했다.

주위의 삐딱한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 안지영은 볼빨간사춘기 관련 인터넷에 댓글로 ‘정말 못생겼다’란 글이 올라오자, 바로 밑에 ‘어쩌라고’란 댓글을 직접 달았다. ‘악플’도 관심이 많아 생긴 거라 생각하고 넘긴다고. 우지윤은 “소속사 대표님이 계약하기 더 어려울 뻔 했다며 ‘슈퍼스타K’ 생방송 무대에 진출하지 못한 걸 더 좋아한다”는 얘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두 사람은 여고생 둘이 수다를 떨듯 인터뷰 내내 서로 맞장구를 치며 속사포처럼 얘기를 쏟아내다가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축제 행사장으로 떠났다.

“처음으로 대학교 축제에 초대 받았어요, 하하하. 요즘 너희가 사춘기냐며 ‘볼파란갱년기’로 활동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들 하시는데, 맞아요. 순수함은 점점 사라지겠지만, 최대한 사춘기의 감정을 놓치지 않으며 공감을 줄 수 있는 곡을 만들고 싶어요.”(안지영)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mailto: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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