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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봉서 "내가 죽더라도 후원 끊지 말라" 유언

조경이 기자 입력 2016. 08. 29. 00:13 수정 2016. 08. 2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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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원에 37년째 남몰래 선행.. '한국 희극계의 전설' 코미디언 구봉서 원로장로 소천
구봉서 장로는 37년간 경북 문경시에 위치한, 고아들을 위한 사회복지법인 ‘신망애육원’을 후원해 왔다. 전성기 시절인 1982년 이곳을 방문해 원생들을 격려한 뒤 기념촬영했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신망애육원의 현재 모습으로 60명의 아이들과 19명의 선생님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신망애육원 제공
구봉서 장로

“내가 죽더라도 고아원 후원은 끊지 마세요.”

27일 오전 1시, 90세를 일기로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구봉서(서울 예능교회·사진) 원로장로가 유언으로 부인 정계순(78) 권사에게 남긴 말이다.

고인은 바쁜 연예인 생활 중에도 남몰래 고아원과 정신지체 아이들을 후원해 왔다. 특히 경북 문경의 사회복지법인 신망애육원을 1979년부터 37년째 후원하고 있다. 신망애육원 황영일 이사장은 “구 장로님이 37년째 매달 후원을 해왔다”며 “빈소에 가서 사모님을 뵀는데 ‘내가 죽더라도 후원을 계속하라’고 하셨다고 들었다.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신망애육원은 54년 5월 5일 12명의 고아들을 데리고 개원했다. 설립자인 고 황용석 장로는 ‘오늘은 틀림없이 좋은 날이다’를 교훈으로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마음과 강건한 신앙심을 길러주었다. 지금까지 800여명이 넘는 아이들이 양육돼 목회자를 비롯해 교수, 박사 등 건강한 사회인으로 배출됐다. 현재 60명의 원생들이 보살핌을 받고 있다. 고인은 이 고아원을 수차례 방문해 아이들을 격려하곤 했다.

고인은 70년대 중반 고(故) 하용조 목사의 전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이후 연예인 성경공부 모임을 통해 연예인교회(현 예능교회) 설립을 도왔다. 동료 기독연예인과 연예계 복음화에도 힘썼다. 틈틈이 해외 선교활동을 하기도 했다.

1926년 북한 평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45년 대동상고를 졸업한 직후 태평양악극단 악사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TV 코미디 프로그램은 물론 400여편의 영화, 980여편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69년부터 85년까지 MBC ‘웃으면 복이 와요’에 출연해 수많은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곽규석 배삼룡 서영춘 김희갑 등과 함께 60∼70년대 한국 코미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한국 코미디계 발전에 일조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포장, 옥관문화훈장에 이어 2000년 MBC 코미디언부문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2006년 제1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연예예술발전상을 수상했다. 2013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56년 ‘애정파도’를 시작으로 ‘오부자’ ‘부전자전’ ‘맹진사댁 경사’ ‘돌아오지 않는 해병’ 등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대히트작인 ‘오부자’에 막둥이로 출연한 것이 계기가 돼 평생 ‘막둥이’라는 애칭으로 사랑받았다.

구 장로는 2009년 1월 자택 욕실에서 넘어져 뇌출혈로 의식을 잃은 뒤 뇌수술을 받았다. 일주일에 세 번 신장 투석을 하러 병원에 다녔지만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명예집행위원장 전유성씨는 “우리가 힘들고 어렵고 못살고 추웠던 시절에 서민들이 웃을 수 있었던 건 코미디 덕분이었다”면서 “큰 기둥을 잃은 것 같아서 정말 마음이 굉장히 힘들다”고 애도했다.

장례식장은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이다. 발인은 29일 오전 6시,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이다.

조경이 기자 rooke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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