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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기만 하면 결국 붕괴된다..MBC '앵그리맘'

입력 2015. 05. 03. 09:31 수정 2015. 05. 03.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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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에서 시작해 우리 사회 총체적 부정부패의 사슬 고발 세월호 참사 직설적으로 비유..코믹한 판타지로 경쟁력도 키워

학교폭력에서 시작해 우리 사회 총체적 부정부패의 사슬 고발

세월호 참사 직설적으로 비유…코믹한 판타지로 경쟁력도 키워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모른 척 피하기만 하면,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는다.

때리지 말라고, 괴롭히지 말라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 잘못됐다고, 위험하다고 경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괜히 나섰다가 피해를 볼까 두렵고, 애써 노력해봤자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안다. 당장 사는 게 바쁘다.

하지만, 더럽다고 눈감아버리고 외면하면 세상은 점점 가지 말아야 할 길로 굴러가게 된다.

그러다가 성수대교가, 삼풍백화점이 무너져내렸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갖은 형태의 폭력에 희생됐고, 군대에서 장성한 아들들이 죽어 나갔다. 그리고 세월호는 침몰했다.

MBC TV 수목극 '앵그리맘'은 학교 폭력에서 시작해 사학비리, 교육계와 정치권의 부패,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구성하는 현실을 상당히 강렬한 색감으로 그려내고 있다.

올해 38세의 김희선이 여고생 조방울로 변장해 모두를 감쪽같이 속이고, 그런 조방울의 옆에 언제 어디서든 부르면 나타나는 여자 조폭친구 한공주(고수희 분)가 있다는 설정은 코믹한 판타지다. 이런 설정이 생산하는 다양한 볼거리는 이 드라마의 대표적인 경쟁력 중 하나다.

하지만 '앵그리맘'은 단순히 황당무계한 코미디에 머물지 않는다. 드라마는 우리사회의 총체적 비리와 썩은 살을 정조준하며 강하게 밀어붙인다. 선혈이 낭자하고, 폭력이 횡행한다.

절대 간단하지 않은 '앵그리맘'이 이제 마지막 2회를 남겨두고 있다. 시청률은 한 자릿수로 낮았지만 화제성과 주제, 스토리의 완성도는 최근 방송된 드라마 중 단연 최고였다는 평가다.

◇ 앵그리맘을 만드는 세상…"내 아이의 안전은 누가 지키나"

정기적으로 새 낱말(신어)의 출현을 살피는 국립국어원은 2013년 7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일간지 등 139개 온·오프라인 대중매체에 등장한 신어 334개를 조사해 지난 3월 '2014년 신어'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자녀 교육에 관한 사회문제에 분노하고 해결에 적극 참여하는 여성'을 뜻하는 '앵그리맘'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앵그리맘'이라는 단어 이전에 이미 화난 엄마들은 세상 밖으로 뛰어나왔다. 꼭 교육문제가 아니다.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 때 유모차를 끌고 나선 '유모차 부대'부터, 윤일병 사건으로 대변되는 군대 내 폭력 사건, 무상급식 논란, 아동 학대 그리고 최근의 세월호 참사 등 일련의 사건에서 앵그리맘들은 결집했고 세상을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이들을 화나게 하는 것은 내 아이의 안전을 누구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도, 학교도, 경찰도, 사법제도도, 군대도 지켜주지 않는다. 내 아이 입에 들어가는 먹을거리, 내 아이가 살아가는 사회,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고 정의가 살아있지 않은 나라에 대한 실망이 이들을 움직이게 했다.

드라마 '앵그리맘'은 자신의 딸이 학교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에 눈이 뒤집힌 젊은 엄마 조강자가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 딸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딸이 다니는 명성고에 위장잠입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자식 문제 앞에서는 물불 안 가리는 엄마들의 심정을 조강자는 온몸으로 대변하며 지지를 받았다. 엄마라면 누구라도 조강자처럼 나서서 자식을 지키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더럽다고 피하기만 하니 세상은 점점 똥 밭이 돼가는 것 같아"

처음에는 학교폭력에만 국한되는가 싶던 이야기는 명성고가 재단 회장부터 이사장과 교사, 그들 위에 군림하며 고고한 척하지만 사실은 위선자인 교육부장관 출신 대선 후보가 빚어내는 온갖 악행과 부패의 근거지라는 사실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엄청난 사이즈로 커버린다.

한마디로 명성고 내 학교폭력은 우리 사회 총체적 비리의 깃털일 뿐이었고, 진짜 몸통은 겁도 없이 덤빈 조강자에게는 게임이 되지 않는 상대였던 것이다.

조강자는 이 과정에서 번번이 좌절한다. 해결될 듯, 손에 잡힐듯하던 비리의 실체는 번번이 조직적 은폐와 위조 속에서 도망가버리고 매 순간 남는 것은 좌절감과 패배감이다.

조강자는 "더럽다고 피하기만 하니 세상은 점점 똥밭이 돼가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그의 남편은 "알아도 참고 몰라도 참고 다 참고 살아. 왜? 해봐야 안되니까"라고 말한다.

조강자의 딸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말하지만, 명성고 재단 회장의 아들은 "그래봤자 지렁이"라고 단번에 무시한다.

급기야는 딸을 구하겠다고 덤벼든 자신의 행동이 오히려 딸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자 조강자는 "처음부터 우리가 싸울 상대가 아니었다"며 두려움에 몸서리친다.

주변에서는 "세상이 아무리 미쳐 돌아가도 너와 네 딸만 생각해"라고 '조언'한다. 문제를 회피하고 도망가라고 부추긴다.

그러자 조강자는 "이 땅에서 살기 싫어졌다"며 이민을 결심한다. 우리 사회에서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자주 들어온 말이다.

◇"괴물과 싸울 땐 괴물밖에 안보이지만 세상에 괴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앵그리맘'의 스토리적 완성도는 지난달 30일 방송에서 그 정점을 보여줬다. 기승전결의 과정을 뚝심 있게 밟아오던 드라마는 이날 방송된 14회에서 클라이맥스를 찍으며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보름남짓 지난 시점에서 방송된 이날 '앵그리맘'의 이야기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직설적인 비유였다. 또한 앞선 우리사회 참사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참회였다.

대선후보의 선거자금을 세탁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 명성고 별관의 부실공사가 결국 붕괴 참사로 이어지는 과정을 그리면서 드라마는 세월호가 침몰하기까지 벌어졌던 우리 사회 모든 비리와 부정부패를 똑바로 겨냥했다. 예고된 참사였지만 누구도 건물이 붕괴하고 아이들이 희생될 때까지 이를 막지 않았다. 이번에도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은 없었다. 그러면서 비리의 주범과 책임자들은 알아서 먼저 빠져나갔다.

2014년 MBC 극본공모 우수상 수상작인 '앵그리맘'의 김반디 작가는 이 작품을 기획하면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이야기했다. 과연 그 마음이 드라마로 어떻게 구현될까 싶었는데, 신인 작가가 당당히 지상파 데뷔작에서 현재 진행형인 사회적 문제를 들고나와 시청자에게 피하지 말고 마주하라고 한 것이다.

지옥의 아비규환을 그렸지만 드라마는 마지막에 희망의 불씨를 피운다. 어쩌면 여고생으로 위장한 조강자보다, 남자 부하들을 한무리 거느린 한공주보다 더 큰 판타지일지도 모르지만, 이 시대 양심과 순수의 상징인 교사 박노아(지현우)와 그의 응원으로 다시 용기를 얻는 조강자의 모습을 통해 남은 2회를 기대하게 한다.

박노아는 도망가려는 조강자에게 "괴물과 싸울 땐 괴물밖에 안보이지만 세상에 괴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차마 나서서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지만 어디선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조강자의 딸은 건물 붕괴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조강자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아이들'을 위해 끝까지 싸우기로 결심한다.

세상 모든 일이 엄마의 마음처럼 돌아갈 수는 없을까.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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