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 ③ 김영민 "태사자 활동 더 열심히 못해 후회 남아"

2015. 2. 6.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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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조 태사자의 보컬.."토토가 보면서 짜릿하고 통쾌한 기분 느껴" 김영민·박준석 연기자로 변신..이동윤은 미국서 요식업

4인조 태사자의 보컬…"토토가 보면서 짜릿하고 통쾌한 기분 느껴"

김영민·박준석 연기자로 변신…이동윤은 미국서 요식업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아~ 예~ 태사자 인 더 하우스~."

'태사자 인더 하우스'로 시작하는 타이틀곡 '도'로 1997년 데뷔한 남성 4인조 그룹 태사자 출신인 김영민(35)은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것도 후회가 남는다"고 활동 당시를 회상했다.

김영민과 함께 보컬을 맡은 박준석(37), 랩을 담당한 김형준(37), 이동윤(36) 등 4명으로 이뤄진 태사자는 당시 하이틴 스타였던 김희선이 출연한 뮤직비디오로 화제가 되며 데뷔와 동시에 스타덤에 올랐다.

김영민은 "희선이 누나가 같은 소속사였다"면서 "누나는 이미 톱스타였는데도 스스럼없이 우리 연습실에 찾아와 간식도 사주고, 데뷔 후에는 버라이어티 쇼에 자진 출연해 우리 홍보도 해줬다"고 예전 추억을 더듬었다.

태사자는 김희선이 작명했다는 소문이 돌았던 독특한 그룹 이름과 딱 붙는 정장 스타일의 의상이 당시 활동한 H.O.T, 젝스키스 등과 차별화되는 요소로 부각되며 주목받았다.

그룹 이름은 소문과 달리 당시 PC 게임 '삼국지'에 빠져 있던 기획사 대표의 아이디어였다고 김영민은 전했다.

"당시 대표님이 삼국지 게임을 좋아하셨는데 기존 그룹은 주로 외국어로 하니까 우리는 다르게 해보자고 얘기하다가 나온 이름입니다. 우리도 신선하다고 생각해 선택했습니다."

의상 역시 기존 그룹과의 차별화에 초점을 두고 선택한 것이라고 김영민은 밝혔다.

그는 "우리가 아마 쫄바지 패션의 원조일 것"이라며 "딱 달라붙는 옷 입고 락킹댄스를 하니까 옷이 자주 찢어졌다. 요새는 같은 그룹이어도 각자 개성에 맞춰 옷을 다르게 입는데 그때는 4명 모두 똑같은 차림으로 출연했다"며 웃었다.

1집 앨범은 '도' 외에도 발라드곡 '타임'(Time) 등이 히트를 치며 이들에게 방송사 신인가수상을 안겼다.

인기를 얻으면서 몰려든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살찔 틈도 없었다고 김영민은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살이 안찌는 체질이 아닌데도 댄스가수를 하다보니 굉장히 말랐었다"며 "다음 앨범을 위해 활동을 쉬니 멤버들 모두 곧바로 20㎏가 찐 적도 있다"고 말했다.

데뷔 앨범으로 이름을 알리는데 성공한 태사자는 곧바로 9개월 뒤 두번째 앨범을 내놓고 '인기 굳히기'에 나섰다. 두번째 앨범도 타이틀곡 '애심'과 '블루 버스데이'(Blue Birthday) 등이 인기를 끌며 2연타에 성공했다.

그러나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이들은 뜻하지 않은 문제에 부딪혔다. 소속사 내부 문제에 멤버들의 입대와 영주권 문제 등이 맞물리면서 활동하는데 어려움이 생긴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놓은 3집 앨범은 이전만큼 주목을 받지 못했다. 사실상 마지막 앨범인 4집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해 흐지부지하게 활동을 마무리해야 했다.

김영민은 "그때 (소속사) 대표님이나 직원들이 사무실에 매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해체한다 만다는 말도 없이 베스트 앨범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했다"고 당시 사정을 밝혔다.

당시 멤버들 간에도 진로 문제 등을 놓고 근본적 견해차가 생겼다고 김영민은 전했다. 수년간 연습생 생활을 거쳐 데뷔하는 요즘 아이돌그룹과 달리 짧은 시간 준비한 뒤 데뷔하다 보니 가수 활동 자체를 놓고 견해가 서로 달랐다는 것이다.

김영민도 처음부터 가수를 꿈꾸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당시 아역배우들을 많이 배출한 연기교육기관인 MTM 출신"이라며 "원래 연기자를 꿈꿨는데 그곳에서 알게 된 분이 제가 노래하길 좋아한다는 걸 알고 오디션에 응모해보라고 권했던 것이 태사자 활동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다른 멤버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김형준을 래퍼로 데뷔시키려던 소속사가 '2% 부족하다'는 생각에 찾은 보컬이 김영민이었고, 그 당시 멤버 수가 많은 아이돌그룹이 유행하자 다시 추가 선발에 나선 것이다. 김영민의 뒤를 이어 박준석이 소위 '길거리 캐스팅'됐다. 세 멤버에게 부족한 '강렬한 이미지'를 더해줄 멤버로 마지막에 재미교포인 멤버 이동윤이 발탁됐다.

"동윤이 형은 당시 프로듀서 형 친동생의 친구였는데 방학을 맞아 잠깐 국내 들어왔다가 캐스팅돼 그길로 3년간 못돌아갔었지요. 하하"

네명의 멤버가 실제 데뷔를 준비한 기간은 짧게는 6개월부터 길어야 1년이었다.

김영민은 "요즘 가수들은 가수라는 꿈을 갖고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 데뷔하는데 우리는 그러지를 못했다"면서 "저같은 경우 가수를 계속 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해 갈팡질팡했다"고 말했다.

4집에 뒤이은 베스트앨범을 끝으로 태사자는 데뷔 4년 만에 자연스레 해체됐다.

이동윤은 미국으로 돌아가고, 나머지 멤버들은 뒤늦게 군 복무를 마쳤다.

이동윤은 미국에서 가업을 이어받아 요식업에 뛰어들었다. 현재 상당히 큰 규모로 사업체를 운영한다고 김영민은 전했다.

활동 당시에도 '꽃미남' 외모로 유명했던 박준석은 수년 전 연기자로 전향했다. 김형준은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휴대전화 액세서리 사업을 한다는 근황이 전해졌다.

김영민은 태사자 해체 직후 뮤지컬 무대에 출연했다가 2007년 입대했다. 그는 현재 단편 예술영화를 촬영 중이라고 근황을 전했다.

"제대 후 연기를 시작하고 싶었는데 집안사정상 공백이 길어졌습니다. 방황도 너무 오래했고요. 이제 마음을 다잡고 원래 꿈이었던 연기를 제대로 해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네 멤버 모두 '싱글'이라고 김영민은 덧붙였다.

서로 각자의 길을 가다 보니 네명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2009년이 마지막이다.

"동윤이 형이 2009년에 국내 잠깐 들어왔을 때 봤으니 그것도 이미 오래전 얘기네요. 형 사업이 상당히 큰 규모여서 자주 못들어오거든요. 솔직히 동윤이 형을 제외하고 다른 멤버와는 거의 연락을 제대로 안하고 지냈습니다. 가끔 전화해 안부나 묻는 정도였지요."

그러던 멤버들과 다시 연락하게 된 계기는 최근 복고 열풍을 불러일으킨 '무한도전 - 토토가' 방송을 보고서다.

그는 "같은 시절 활동했던 동료들을 보니 눈물 날 정도로 그리웠다. 알 수 없는 짜릿하고 통쾌한 기분에 며칠 전 멤버들에게 전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태사자 팬클럽 '천우운풍' 회원들에게 '연기자 김영민'으로서 자리 잡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다짐했다. 연기 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음반을 내는 것도 예전 팬들에게 자신이 잘 지내고 있다는 얘기를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라고 말했다.

그는 "태사자 때를 돌아보면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게 후회로 남는다"면서 "그때의 교훈을 생각해 이번에는 제대로 열심히 해보고 싶다. 언젠가 예전 팬분들께 좀 더 멋진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luc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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