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가의 서'가 남긴 것

조현민 입력 2013. 7. 2. 12:22 수정 2013. 7. 2. 12:2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티브이데일리 조현민의 호크아이] MBC 월화드라마 '구가의 서'는 지난 달 25일 종영됐지만 그 여파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8일 시작된 이래 월화드라마 시청률 1위를 고수하며 20%에 가까운 높은 시청률을 올린 이 드라마는 시청률의 수치로만 표현하기 힘든 높은 인기와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그 영향력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남녀주인공 이승기와 수지의 확고한 자리매김이다. 두 사람 모두 가수 출신 연기자로 배우보다는 가수에 더 비중이 큰 인물들. 하지만 이들은 '구가의 서'를 통해 확고한 연기자로 자리 잡았다. 이승기의 경우 이제는 가수 겸 배우라는 호칭을 넘어서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로 인정받았다. 수지는 방송 초기 어김없이 연기력 논란에 휘말렸지만 이내 핸디캡을 딛고 국민첫사랑의 이미지를 더욱 탄탄하게 굳히며 이제 연기력도 어느 정도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장 큰 수혜를 입은 배우는 최진혁이다. 최강치(이승기)의 아버지 구월령 역을 맡아 1~2회 짧은 등장만으로도 강한 임팩트를 심어준 그는 후반부에 재등장하며 '월령앓이'라는 수식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구가의 서'가 낳은 샛별로 급부상했다.

악의 축 조관웅 역을 훌륭하게 연기해낸 이성재의 재발견도 이 드라마가 거둔 커다란 수확. 이성재는 연기력에 있어서는 논란의 여지가 필요 없을 정도의 베테랑인데 그동안 대부분 선한 역만 해왔기에 이번 그의 소름 끼치는 조관웅 역할은 배우로서 그의 존재감을 새삼스럽게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 드라마는 퓨전 사극이다. 판타지와 멜로를 기본축으로 하는 복합적 장르를 표방했다. 그동안 변형된 퓨전 사극은 종종 있어왔지만 '구가의 서'는 그 중에서도 단연 특별한 퓨전 사극이다. 왜냐면 이 드라마는 '뻔뻔'하게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을 강요하는 철학성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최강치는 신수인 아버지와 평범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수의 정체성이 애매모호한 인물로 사람보다는 신수의 성격이 더 강한 캐릭터다.

그의 평소 모습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지난 20년간 자신이 사람인 줄 알고 자라왔다.

하지만 그는 분노하면 신수의 본능이 밖으로 표출돼 외모가 험하게 변하고 괴력을 발휘한다. 게다가 그는 신수가 됐을 때 이성을 잃는 바람에 사람으로 되돌아오고 나면 신수의 모습이었을 때의 행동과 생각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고 꺼려하며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고 이단시 한다. 평소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의 정체성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최강치는 이순신(유동근) 공달 선생(이도경) 담평준(조성하) 등의 정신적 스승들에게 수시로 묻는다. 사람답게 사는 게 어떤 건지를. 그리고 그 스승들은 반인반수지만 웬만한 사람보다 더 인간적인 최강치를 응원하고 그가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돕는다.

이 과정에서 이 드라마는 과연 사람답게 사는 게 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악귀처럼 사는 조관웅이 사람인가, 신수의 모습이지만 사람이 되고자 하고 그래서 사람보다 더 착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최강치가 사람인가에 대한 물음표다.

최강치는 마지막 회에서 담여울이 죽은 뒤 무형도관을 떠나면서 '(사람이 되기 위해) 구가의 서를 찾아가느냐'는 담평준의 질문에 '당분간 신수로 살아보겠다'고 대답한다. 이는 인간성과 올바른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 이 드라마의 결론이다.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인간답지 못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어떤 모습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어떤 심성으로 살아가느냐가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끝맺음이다.

즉 최강치가 자신의 천성인 착하고 선한 본질에서 어긋나지 않는 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인간성은 본질에 있는 것이지 겉으로 드러난 허울에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이다.

이 드라마는 이렇게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담고 있다. 최강치와 담여울(수지)의 순수하되 애절하고 애달픈 사랑을 중심축으로 사람과 신수의 교류를 그린 판타지를 덧입히고 여기에 살짝살짝 코미디와 섹시코드까지 담아내며 종합선물세트같은 장르의 '짬뽕'으로 다양한 재미를 주는 가운데 완성도 면에서도 결코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과유불급. 재미와 교훈에 대한 집착이 지나치다 못해 방점을 잘못 찍는 결정적인 결례를 시청자에게 범했다. 드라마의 결론이 그것이다.

이 드라마는 여타 드라마의 천편일률적인 해피엔딩 끝맺음을 피하고 시청자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여주인공 담여울을 죽이는 강수를 뒀다. 하지만 거기서 끝냈어야 했다.

최강치는 구가의 서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신수로 영생의 삶을 살게 되고 드라마 말미는 422년 뒤 현재의 서울로 점프한다.

최강치는 돈을 많이 번 재벌 회장이 돼있다. 그는 자신의 기업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외출을 준비하는데 스마트폰이 진동하면서 화면에 '유연석'이라는 발신자 성함이 뜬다. 유연석은 최강치의 친구인 백년객관의 후계자 박태서 역을 연기한 실제 배우의 이름이다.

최강치가 펼치는 잡지에는 공달 선생이 건강식품을 광고하는 모델로 등장하고 최강치의 아버지 최마름(김동균)은 최집사가 돼 최강치 회장을 보필하는 역으로 환생했다.

백년객관의 막내 억만(김기방)이는 최강치가 묵는 고급 레지던스의 벨보이가 돼 최강치의 고급 스포츠카를 발렛해주면서 자신의 이름을 억만이라 부르는 최강치에게 자기는 김기방이라고 이름을 제대로 잡아주면서 최강치가 멀어지자 '나이도 어린 게'라며 툴툴거린다.

422년 전 여수 깡패 두목이었던 마봉출(조재윤)은 현재에선 경상도 깡패가 돼있다. 그리고 곤(성준)과 이순신은 국가안전관리국 요원이 돼 최강치의 방문을 두드린다.

아이디어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마치 홍콩의 판타지 무협액션을 보는 것처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설정은 기존 드라마에서 볼 수 없는 신선한 발상이다. 하지만 거기서 짧게 끝났어야 했다. 굳이 과거의 등장인물을 모두 현재에 환생시키는 억지는 과유불급이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23회까지는 잘 만들어진 퓨전 판타지 사극이었는데 마지막 회에서 어이없는 코미디를 만들고 말았다. 이렇게 과거의 인물을 모두 현재에 등장시켜 헛웃음을 나오게 만든 작위적인 설정은 작품을 용두사미로 만들어버렸다.

그나마 이 드라마에서 마지막으로 미덕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는 장면은 현재에서 최강치와 담여울이 초승달 걸린 도화나무 아래에서 재회하는 설정이었다.

최강치는 무려 422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담여울과 재회했지만 어차피 그들은 결합하면 둘 중의 한 사람이 요절한다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설정을 윤회와 엮였다.

이승기는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그가 군 입대 전 '구가의 서'가 마지막 작품이 될 가능성은 적다. 최소한 한두 작품 더 출연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최강치에게 있어서 '남자'가 되기 전의 연예생활에서 '구가의 서'는 가장 인상 깊은 드라마가 될 것이다. 그만큼 배우 이승기를 훌쩍 성장시키고 그 이상의 깊은 인상을 시청자에게 심어준 작품이자 멋진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수지는 이제 연기자로서도 탄탄대로 앞에서 서있다. '구가의 서'가 남긴 수지의 이미지는 여전히 '국민 첫사랑'이지만 그는 하루 빨리 연기력 논란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고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장해야 하는 중차대한 숙제를 떠안고 있다. 하지만 수지의 앞날의 일기예보는 '맑음'이다. 그는 '여인'의 역할을 맡기 전에 최소한 한번쯤은 더 '국민첫사랑'의 캐릭터를 맡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 캐릭터는 분명히 담여울보다는 한층 성장한 모습이어야 한다. '구가의 서'를 통해 이승기와 수차례 키스신을 연기하며 영화 '건축학개론'의 설익은 뽀뽀신과는 다른 성숙한 모습으로 한 계단 올라섰다면 다음 작품에서는 신의 문제가 아니라 캐릭터의 변화로 만 스무 살을 맞는 배우로서의 이미지형성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향후 앞날이 불확실한 오리무중은 구월령 박태서 곤 등 중요한 주조연을 각각 맡았던 최진혁 유연석 성준 등의 신인배우다. 지금까지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세 남자배우는 '구가의 서'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으며 향후 중요 작품의 주요 배역 캐스팅에 유리한 고지에 우뚝 올라섰다. 하지만 주연을 맡기에는 아직 지명도가 약하고 주조연을 계속해서 맡기에는 연기력이 불확실하다. 이 작품을 계기로 연기력의 깊이를 쌓는데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주요작 캐스팅의 기회를 날려버릴 것이고 그 시간이 길어지면 '구가의 서' 속의 캐릭터는 대중의 뇌리에서 잊히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 드라마 데뷔작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에서 강마루(송중기)의 여동생 강초코 역을 맡아 '견미리의 딸'로 이름을 알린 이유비는 '구가의 서'를 통해 확실히 일취월장했다. 반가의 규수로 태어나 고위관리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가 평탄하게 부귀영화를 누리는 길을 걷기 직전 하루아침에 집안이 몰락해 관기로 전락하는 박청조 역을 맡은 이유비는 어린 나이에 강단 있는 기생 역할을 빈틈없이 소화해냈다.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적응해 강하고 줏대 있게 생활해나가는 박청조의 모습에서 이유비는 나이 어린 신인 연기자가 아닌 '무서운 신인의 탄생'을 당당하게 세상에 선언했다.

[티브이데일리 조현민의 호크아이 news@tvdaily.co.kr / 사진=티브이데일리DB]

구가의 서

| 수지| 이승기

[ Copyright ⓒ * 세계속에 新한류를 * 연예전문 온라인미디어 티브이데일리 (www.tvdaily.co.kr)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Copyright © 티브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