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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작가의 가족 집착이 무시무시한 이유

조민준 입력 2013. 02. 05. 15:46 수정 2013. 02. 0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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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편 춤추게 한 김수현 작가에게 가족이란?- < 무자식 > , 김수현 작가 미스터리에 관한 가설

[엔터미디어=조민준의 드라마 스코프] 미혼모가 되었다는 사실을 숨긴 채 홀로 아이를 키우려 했던 맏손녀는 상상도 못했던 육아의 힘겨움에 백기를 들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둘째네 집에 새로 들어온 며느리에게는 부모가 없다. 시부모에게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고 싶었다는 그녀는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그리고 셋째 며느리에게는 아이가 없다. 한 사람 더, 겨우 이십 대 중반인 첫째의 막내아들이 결혼하고 싶다며 징징거리는 상대, 열여덟 먹은 그녀에게도 부모가 없다.

이 드라마와 관련한 지난 칼럼에서 나는 '왜 김수현 작가의 가족관은 멜로드라마와 홈드라마를 오가며 극단의 모습을 보여주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 첫 번째 가설의 키워드는 '결손'이다. 완전한 구성의 가족과 불완전한 가족, 그것이 각각 김수현 작가의 홈드라마 속 가족과 멜로드라마 속 가족을 대표한다. 서두에 언급한 네 명의 여성 캐릭터들을 보자. 이들 중 몇은 직선적인 성격은 물론이요, 태생적인 환경에서도 김수현 멜로드라마 여주인공의 전형과 무척 닮았다.

여성 캐릭터가 가진 결손의 이미지. 이것이 가족으로부터 끝내 충족되지 못할 경우 그녀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사랑 밖에 없다. 그러면 이야기는 멜로드라마가 된다. 가족이라는 도피처, 혹은 구원을 통해 그것이 충족되는 세계가 김수현의 홈드라마다. 완전한 가족, 즉 이상향의 전제가 되는 것은 건강한 중산층이어야 한다는 점. 따라서 비록 부자이거나 시부모가 엄연히 생존해 있다고 해도 여주인공의 결손을 포용하지 못하는 멜로드라마 속 남자의 가족들은 완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결국은 다르지 않았다는 얘기다. 김수현의 멜로드라마와 홈드라마의 가족관이 극단에 위치하고 있는 듯 보여도 실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다른 가지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가설을 통해 김수현 작가의 모든 드라마를 아우르는 세계관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결국 가족에서 비롯되며, 그것을 극복할 힘 또한 가족에게 있다는 것. 텔레비전 뉴스로 고시원 화재 소식을 보고, 바로 그 현장에 있었던 수미에 대해 연민을 표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은 작가의 그러한 세계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 중 하나다.

문제는 어쨌든 당대의 한국사회에서 화목한 대가족이란 줄곧 이야기했듯 판타지에 가깝다는 데서 발생한다. 그리하여 작가가 촘촘하게 구축한 일상의 리얼리티는 때로 판타지와 부딪히거나 거칠게 서걱거린다. 항시 부딪히지 않는 이유는 부모의 화목을 위해 집으로 들어와서 살기로 결심한 둘째네의 손자라든가, 착한 심성은 물론이요 어른 앞에서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제대로 알고 있는 열여덟 살 소녀 수미처럼 판타지에 부합하는 인물들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인데,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변화한 시대로부터의 도전과도 불가피하게 맞닥뜨려야 한다는 거다.

이를테면 독신주의자인 장손이라든가, 미혼모가 된 맏손녀처럼. 드라마에 중요한 극적 거점을 제공했던 이 같은 충돌 앞에서는 결국 판타지도 타협안을 내놓는다. 그리고 그들을 굴복시키거나(장손) 포용하면서(맏손녀) 21세기에도 노인의 판타지는 다시 생명력을 얻는다. < 무자식 상팔자 > 에서 다소 예외적인 충돌의 사례가 있다면 부모는 물론 조부모까지 모시고 살겠으니 결혼만 시켜달라는 첫째의 (구세대적 가치관을 지닌) 막내아들과 그 어머니와의 갈등일 텐데, 여기서의 쟁점도 결국 어머니가 말하듯('양친이 생존해 있는 집에서 내 아들이 사랑받으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결손에 대한 공포다.

희생을 치르더라도, 때론 양보하더라도 차마 버릴 수 없는 완전한 가족에의 집착. 이것이 때로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어쩌면 단지 판타지에 그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이 끝난 후 어느 지인이 남긴 평가처럼 말이다. "자식들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싶지 않았던 노년층들이 위기의식을 느낀 것 아닐까? 복지사회라는 건 결국 더 이상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는데다 오히려 자신들이 소외되는 세상일 뿐일 테니까."

칼럼니스트 조민준 zilch92@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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