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연 vs 이상은, 누가 더 멋졌나

박진규 2012. 7. 3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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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은·이지연, 오래 기억되는 그녀들의 전성기- 1988년, 세 명의 10대 여가수에 대한 기억 (B)면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1988년의 녹음테이프에 담긴 이지연의 히트곡은 '난 사랑을 아직 몰라'이다. 한참 뒤 영화 < 어린 신부 > 에 출연한 문근영이 불러서 다시 인기를 끌었을 만큼 이 노래는 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곡. '나는 열아홉 살이예요'라는 윤시내 노래의 록큰롤 버전 같은 '난 사랑을 아직 몰라'는 10대 소녀가 아니면 쉽게 어울리지 않는 가사와 멜로디였다.

이 노래를 부르는 이지연은 김완선처럼 노련하거나 이상은처럼 무대를 휘젓고 다니지는 않았다. 이지연은 뭐랄까, 웃으면서도 울먹이는 것 같은 표정. 열심히 애쓰지만 무대에서 어딘지 늘 불안해하는 인상이었다. 10대라는 나이가 언제나 갈팡질팡하는 시기이듯 말이다.

이지연은 10대 여가수 혹은 청순한 여가수의 틀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시했다. 김완선 초기의 음악은 10대들만을 위한 10대 소녀의 음악이라 보긴 어렵다. 김완선의 초기 음악을 맡은 산울림의 멤버 김창훈이나 3집 음악을 총지휘한 이장희 모두 70년대 후반의 사람들이다. 그래서 김완선의 3집까지의 음악들은 어딘지 어른스러운 느낌이 강했다. 김완선의 발랄한 모습은 그녀가 출연했던 CF 써니텐의 '흔들어 주세요'에서 더 잘 느껴졌다.

하지만 김완선의 '써니텐' 광고를 물려받은 이지연은 말 그대로 10대의 감수성이 충만한 발라드나 댄스곡들을 불렀다. '그때는 어렸나봐요'나 '난 사랑을 아직 몰라' 등등. 그리고 빅히트곡 '바람아 멈추어다오'가 담긴 2집의 '졸업'이란 노래 역시 졸업을 앞둔 여고생의 심정을 가사에 담아 긴 시간 동안 잔잔하게 인기를 끌었다. 여성 안티팬을 몰고 다니고 남성팬들의 충실한 인기를 끌던 이지연이었지만 의외로 음악은 10대 소녀의 감수성에 가장 잘 맞는 노래였다. 혹은 10대 소녀가수라는 틀에 가장 적합한 노래들이거나.

하지만 이지연의 보컬 소화력을 엿볼 수 있는 노래는 그녀의 마지막 4집 앨범의 곡들이었다. 인기의 절정에서 사랑하는 남자와의 미국행 후에 1년 만에 귀국해 발표한 이 앨범은 철저히 대중들에게 무시당한다. 하지만 그 앨범의 대표곡인 '삶은 한 번뿐인 걸요'와 '사랑은 기적'은 성숙하고 여성스러우면서도 호소력 있는 이지연의 목소리가 가장 빛을 발하는 곡이었다.

4집의 노랫말에서 느껴지듯 이지연은 삶은 한 번뿐이라는 명제를 어린 나이에 실천했다. 사랑을 위해 과감하게 스타라는 틀을 던져버렸다. 그리고 그 후 20년이 지난 지금 뉴욕에서 요리사로 변신한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듯하다. 그녀의 표정은 '난 사랑을 아직 몰라'를 부를 때처럼 불안하게 보이지 않는다.

김완선과 이지연이 과즙탄산음료 '써니텐'의 CF를 찍은 것처럼 1988년도 강변가요제 대상을 차지한 이상은은 데뷔하자마자 '보리텐'이란 보리탄산음료의 CF를 찍었다. 이 광고에는 1988년의 이상은이 대중에게 보여주었던 이미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레드불 두 캔은 연달아 마신듯 헐렁한 셔츠와 멜빵바지차림으로 정신없이 긴 다리를 건들거리는 춤.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처럼 해맑게 웃는 미소년의 표정까지.

당시 10대에 데뷔했던 남자가수들의 인기가 주춤했을 만큼 이상은에 대한 10대 소녀팬들의 열렬한 환호는 대단했다. 경아나 스잔을 불렀던 10대 오빠들보다 '담다디'를 부르며 뛰어다니는 보이시한 언니가 훨씬 더 멋있게 보였던 것이다.

1988년 8월 이후 연말까지 길거리 어디에서든 '담다디'가 흘러나왔다. 서울올림픽을 제외한다면 그해의 가장 큰 화제는 '담다디'와 이 노래를 부르는 이상은이었을 것이다. '담다디'는 괴물노래였다. 노래 자체는 어찌 보면 흔하디흔한 경쾌한 곡이지만 이 노래의 매력은 후렴구의 '무의미함'에 있었다. 떠나간 연인에게 사랑한다고 애원하는 이 노래는 그러나 같은 주제를 가진 1984년도 강변가요제 대상곡 이선희의 'J에게'와는 전혀 달랐다.

'담다디'는 '난 정말 그대를 사랑해/그대가 나를 떠나도'라는 가사보다 '담다디 담다디, 담다디 담/담다디 다담 다다담'이라는 무의미한 후렴구의 힘으로 사람들을 중독 시키는 노래였다. 여기다 이 노래를 부르며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이상은의 이미지까지 곁들여져 이상은=담다디=무의미한 경쾌한 노래라는 하나의 코드로 재빠르게 꿰어졌다.

문제는 정작 이상은이 부르고 싶던 노래는 '담다디'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인터뷰에서 밝혔듯 들국화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상은은 좀 더 감수성 있는 혹은 영혼이 담긴 음악을 꿈꾸었다. 하지만 당시 대중들이 혹은 이상은이란 스타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기획사에서 원하는 음악은 경쾌하고 신나는 곡이었다.

1990년 이상은은 빅 히트한 '사랑할꺼야'의 후속곡으로 자신이 작사한 '그대 떠난 후'라는 노래를 부른다. 라틴풍의 신선한 비트가 멋진 이 곡은 이상은이 부른 마지막 댄스곡이었다. 하지만 '담다디'나 '사랑할꺼야'의 귀여운 모습과 달리 꽁지머리를 한 이상은은 어딘지 성난 집시소년 같았다. 'Don't go babe/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건 아니잖아/Don't go babe/날 떠나가지 마오.' 스타 이상은이 음악인 이상은에게 가지 말라 애원하는 것 같은 이 노래를 부른 후에 이상은은 유학을 선언하고 가요계를 떠난다. '담다디'에서 시작해 2년여의 짧은 활동이었다.

이후, '담다디' 시절을 던진 이상은은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을 찾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지에서 그녀가 만들었던 < 공무도하가 > 와 < 외롭고 웃긴 가게 > 란 앨범은 한국 가요계의 명반으로 자리한다. 그리고 데뷔 후 24년이 지난 지금 이상은이란 가수를 꿰는 코드는 어느새 이상은=삶은 여행=영혼의 노래로 바뀌었다. 그녀는 무대에서 종종 '담다디'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담다디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은 열아홉 때와는 다르다. 열아홉 나이에는 '담다디'란 괴물에 그녀가 압도당했다면 지금은 '담다디'라는 괴물을 여유롭게 어르는 모습이다.

1988년 기억의 녹음테이프를 모두 듣고 다시 24년이 지난 지금 2012년의 녹음 되지 않은 녹음기를 꺼낸다. 자유를 찾아서, 삶을 찾아서, 영혼을 찾아서 사람들은 매일매일의 목소리를 녹음한다. 부딪치고 깨지고 상처받으면서도 시간이 지난 후 모든 것이 남아있길 바라면서.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이지연 미니홈피, 룬커뮤니케이션, 이상은 팬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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