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커버스토리]'전교1등 수재' 박완규, 록 음악에 청춘 바친 이유는..

2011. 9. 1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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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 삼남매 중 막내, '법관' 꿈 접고 실업계 고교 진학
●'부활' 탈퇴 후 나락..목소리마저 잃어버린 로커
●그에게 손 내민 김태원, 처음에는 이해 못해
●"김태원 형님은 애인이자, 친정 엄마"

[동아일보]

록 가수 박완규는 "노래가 부르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미사리 무대를 전전하던 그는 목을 마구 써 성대를 다쳤다.

그런 그가 최근 재기했다. 오세훈 동아닷컴 기자 ohhoony@donga.com

민소매 루즈핏에 하얀 스키니진과 스니커즈 그리고 CF 속 김태원의 "혼자 왔니?"가 연상되는 찰랑찰랑 긴 생머리…. 로커 박완규의 모습이었다. "머리 결이 정말 좋아 보인다"는 인사에, 그는 "아, 이건 매직"이라며 머리를 만졌다.

그는 싱글 앨범 '사랑이 아프다'로 4년 만에 본 무대에 돌아왔다. 올 초 록그룹 '부활'의 프로젝트 앨범 머릿곡 '비밀'을 부르긴 했지만 그의 다음 행보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부활'의 리더 김태원을 따라 예능프로그램에 진출했다. MBC '위대한 탄생'에서는 김태원의 멘티들을 혹독하게 평한 '독설가'로 이름을 날렸고, KBS 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에서 50~80대로 구성된 '청춘합창단'의 '울보' 노래 선생님으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이번 앨범에 대해 박완규는 "앞으로 내가 갈 길에 워밍업이 될 앨범"이라고 평가했다. 그가 좋아하는 헤비 록은 아니라는 얘기다.

앨범 타이틀인 '사랑이 아프다'는 그의 대표 록발라드 '천년의 사랑' 작곡가인 유해준이 작업했다. 그는 "유해준이 '사랑이 아프다'를 가져왔을 때 거절을 했다"고 말했다.

"내 취향이 아니라서. 난 '천년의 사랑' 같은 스타일 음악 정말 싫어합니다. 그 노래 이후 내 인생은 비참했습니다. 노래 성향도 싫고, 기억도 싫어서 그런 스타일은 다신 안 부르려 했습니다. 그래도 그 곡을 받은 이유는 날 기억해준 팬들 때문입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8살에 피 덩어리를 토했다"

'로커' 박완규는 1973년 충청북도 청원에서 가난한 집 2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학원 문턱 한번 넘지 않았어도 중학생 때까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장래희망은 법관. 하지만 '가난한 수재'에게 꿈꿀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위로 두 자식을 무리해서 인문계 고등학교에 보낸 아버지는 박완규에게 실업계에 들어가 은행원이 되라고 했다. "막내야, 너까지 가르치려니 힘들구나.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어머니는 그를 붙들고 밤새 서럽게 울었다. 집안에서 제일 공부 잘하던 막내는 그렇게 꿈을 잃었다.

그리고 장학금을 받고 들어간 경기도 평택 태광고에서 그는 음악을 시작했다.

"부모님 뜻을 거스를 수가 없어 실업계를 진학했어요. 그런데 공부도 하나도 안 하고 책도 안 읽었는데 시험에서 1등을 한거예요. 그러니까 공부하기가 싫어진 거예요. 사실 주산, 타자 이런 거 배우니까 재미도 없었고… 그 때 만난 게 음악이에요."

10개월 동안 매일 동네 뒷산에 올라가 소리를 질렀다. 그는 "18살에 피 덩어리를 토했다"며 "가장 고통스러우면서도 시원했던 기억"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요새 제가 잘 풀리는데도 미안해하세요. 저도 부모가 돼보니 그 심정을 알겠더라고요. 자녀가 무언가 하고 싶은데 형편이 안 되서 못 시켜주면 정말 평생의 한이에요. 제 부모님도 그런 한이 있어요."

그는 태광고 동기 드러머 정동철과 함께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며 실력파로 이름을 날렸다. 목소리가 두터우면서도 옥타브가 높은 탁월한 가창력을 가진 신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때 만난 사람이 바로 '부활'의 김태원이다. '부활'의 1997년 경쾌한 히트곡 '론리 나이트'(Lonely Night)는 그가 부른 곡이다. 하지만 그는 1년 여 만에 부활을 나왔다. 그리고 1999년 솔로 데뷔 앨범 '千年之愛(천년지애)'를 발표하고 머릿곡 '천년의 사랑'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정작 그에게 돌아오는 돈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기초 생계비가 없을 정도였죠. 명색이 가장인데…. 아 이런 얘기 더 하고 싶지 않네. 2006년 사비를 털어 4집 Exodus를 녹음하고 계약을 정리했어요. 그 후 완전히 지쳐 버린 그는 18살에 다친 목소리 관리마저 포기하고 살았죠. 막 살았어요. 노래도 막 부르고."

박완규는 중학생 때까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장래희망은 법관이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꿈을 접어야 했다. 장학금을 받고 들어간

경기도 평택 태광고에서 그는 음악을 시작했다. 오세훈 동아닷컴 기자 ohhoony@donga.com

▶ 목소리가 나오는 자체가 신기했던 망가진 '성대'

지난해 말 김태원을 다시 만났을 당시에는 목소리조차 내기 힘든 상태였다. 1994년 결혼한 아내와도 올해 초 헤어졌다. 그래도 김태원은 부활의 신곡 '비밀'을 갖고 와 무작정 부르라고 시켰다.

"마음은 정말 기뻤죠. 그런데 목이 따라주질 않으니 3개월 내내 태원 형님에게 줄기차게 욕먹었어요. 게다가 제 의지도 부족했죠. 태원 형님이 질질 끌고 저를 무대 가운데까지 오게 해주신 거죠."

김태원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며 억지로 그를 끌고 병원에 갔다. 내시경 검사결과 성대는 엉망이었다. 병원에서는 "성대 수술 밖에 답이 없다"고 권했지만, 노래 연습하며 20여 년 간 갈고 닦은 성대 근육이 사라질 수 있다기에 거절했다. 약물로 염증부터 치료했다. 노래 못한다는 망신을 당해도 스테로이드 처방은 받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2달 만에 '기적'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병원에서 내 목 상태로 말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고 하더라고요. 염증부터 치료하기 시작했고 '김태원의 기적'이 시작 된 거죠. 한 달 뒤 병원을 찾아갔는데 의사선생님도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염증치료만 4개월 정도 잡았는데 한 달이 지나고 염증이 아예 없어졌어요. 게다가 뜯겨져나간 성대에 새살이 돋는 것 같다고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그는 현재 자신의 목소리의 75%는 찾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전성기 때와 별 차이 없다고 말하는 인터넷 댓글을 볼 때마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고. 그는 "이달 안으로 90%를 회복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톱스타' 김태원, 나락에 빠진 동생을 구원하다.

가수 '박완규'라고 하면 뒤에 늘 따라오는 단어는 스승 '김태원'이다. 부활 5집 'Lonely Night'로 함께 한 이들은 이 후 공식적으로 함께 활동한 적은 없지만 남모르게 서로를 도와주며 살았다.

박완규는 처음에 자신에게 손을 내민 김태원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김태원은 '국민할매', '위대한 멘토'로 인기가 하늘로 치솟은 상태였다. 그와 함께라면 누군들 화제가 안 될 수가 없었다.

"록의 전설 부활의 콜라보레이션을 함께 하자고 하면 손 내밀 인기 가수들이 많았을 텐데…. 왜 날 선택했냐고 나중에 물어봤어요. 형님은 '아름답고 싶어서'라고 했어요. '인기 많은 가수들이랑 하면 돈은 벌겠지. 하지만 내가 최고의 보컬이라고 생각하는 내 동생이 길거리에 방치돼있는데, 그 동생을 잠에서 깨게 하고 다시 활동하게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게 아닐까?'라고. 눈물이 났죠."

또한 이것은 김태원의 고마움의 표시였다고 한다. 2007년 박완규가 음반을 냈을 때 모든 제작을 김태원에게 맡겼다. 그 때 당시 김태원도 술로 세월을 보냈고 그걸 보는 후배들도 하나 둘 씩 김태원을 떠났지만 박완규는 그 자리를 지켰던 것.

그는 "김태원 형님은 내겐 스승이자, 애인, 그리고 친정 엄마"라고 말했다.

"형님이 가족을 보러 필리핀 마닐라에 가면, 보고 싶어서 빨리 오라고 전화해요. 엄마 맞아요. 딸이 고생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던 친정 엄마. 여자들이 왜 친정 엄마 밥이 제일 맛있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아요. 지친 몸으로 엄마 밥을 찾아간 그 느낌을."

그는 "김태원 형님은 자상하기만 한 건 아니다. 카리스마도 있다. 그 앞에선 신해철도 무릎을 꿇을 것"이라고 했다.

"해철 형님도 태원 형님한테 음악을 배웠으니까요. 김태원 형님께서 방송에서 '부활 27년, 30년을 하면서 나에게 남은 제자가 둘인데 그게 신해철 그리고 박완규'라고 하셨죠. 해철형님은 다른 색깔의 음악을 하고 있긴 하지만 김태원 형님을 보면 고개를 숙이죠."

그가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김태원이다.

"2월 19일 전주에서 있었던 부활 콘서트 때였어요. 김태원 형님을 봤는데 얼굴이 무척 수척해져있고 자꾸 구석에서 헛구역질을 하시는 거예요. 그날따라 형수님도 같이 오셨더라고요. 형수님이 '태원 씨 위암 수술했어'라고 하는 거예요. 아, 정말 한 대 제대로 맞은 기분이었어요. 형님이 이렇게 아프신 데도 웃으시면서 열심히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정말 요동쳤어요. '진짜 제대로 살아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죠."

죽을 각오로 애쓴 끝에 의사도 수술 외엔 답이 없다고 했던 그의 성대도 75%까지 회복했다. 10월에는 단독 콘서트를 열고, 내년 초에는

정규앨범 5집도 낸다. 오세훈 동아닷컴 기자 ohhoony@donga.com

▶태원 형님은 독사 같은 전략가… 기가 막힌 타이밍에 '청춘합창단'으로

박완규를 '청춘 합창단'으로 이끈 사람도 김태원이다. 박완규는 보컬트레이너로서 50%, 김태원의 그림자로 50%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빡빡한 스케줄에 힘든 형님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해드리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러면서 박완규는 "김태원 형님은 독설 같은 전략가"라고 말했다.

"한창 MBC '위대한 탄생'에서 독설가로 이미지가 박혀있던 저를 김태원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청춘합창단'에 합류시킨 거죠. 아마도 형님이 내가 '내 잘난 맛에 음악 하는 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으셨나 봅니다."

'청춘합창단' 에서 '울보록커'가 됐다. 고령의 참가자들의 구구절절 인생사를 들을 때마다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그는 겸손한 목소리로 '청춘합창단'을 통해 인생을, 음악을 다시 배운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오디션 보러 오셨을 땐 완전 초상집분위기였어요. 화면엔 출연자들만 나왔지만 실제론 제작진들도 울었어요. 너무 감정이 격해져 실제로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어요. 그 분들의 삶의 무게를 듣는데 숨쉬기가 힘들었어요."

"오히려 이 프로그램으로 제가 얻어가는 게 상당해요. 노강진 할머님은 84세로 이제는 성대에 힘이 없으시잖아요. 그런데 본인의 과거 합창단 경력과 음악철칙을 지키시려고 음정, 박자를 철저히 지키시면서 노래를 부르시는 데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며 '내가 과연 저렇게 불렀을까? 저 분 인생의 반 토막도 살지 않은 39세의 박완규는 '내 인생은 힘들어'하며 노래를 쉽게 부르려고 하고 포기하려 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어요. 또 합창곡에 솔로파트를 지휘자인 김태원형님께서 정해주시면 그 분은 세상을 다 가지신 것처럼 너무 좋아합니다. 저는 솔로가수잖아요.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서 그 기쁨을 잊고 있었던 거예요. 저의 인생은 그야말로 음악을 하는 삶이었지만 오히려 제가 그 분들에게 지금 음악을 배우고 있습니다."

▶팬 한명을 위해 케이크에 초 꼽고 현빈의 '그 남자' 불렀죠

박완규에게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팬클럽. 박완규의 공식 팬 카페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는데 그것은 실명사용, 연락처, 번지 수 앞까지의 주소 그리고 주민등록앞자리를 공개해야 한다. 현재 이렇게 가입한 사람이 현재 2천 5백여 명 정도다.

그는 시간이 나면 팬클럽에서 이벤트를 연다. 꽃바구니를 준적도 있고, 생일 케이크와 노래 선물을 한 적도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팬이요? 군인 팬이요. 팬 미팅 때 일병인 한 팬이 휴가를 받아서 마지막 날에 저를 보러 왔는데 복귀시간이 간당간당한 시간인데도 제 얼굴 보고 싶다고 5분 보고 갔어요. 군인이 그것도 일병이 복귀시간 어기면 정말 많이 혼나거든요. 근데도 절 보러 와 준 거잖아요. 그래서 그 친구한테 면회 가겠다는 약속을 했어요. 그래서 이번 달 안에 철원으로 군 면회 갑니다. 하하."

잘나가는 그에게도 여전히 아픔은 있다. 올해 초 남이 돼 버린 아내와 아이들이다. 1남 1녀 두 아이는 아빠를 닮아 공부도 잘한다고 한다.

"한창 엄마 아빠 품에서 귀여움을 받아야 할 나이인데 아들, 딸에게 미안해요. 고맙게도 그런 아빠를 아이들이 사랑해줘요. 특히 중학생인 제 아들은 철이 너무 빨리 들었어요. 어느 날 제가 '아빠가 미안하다'라고 문자를 보내면 '아니에요. 아빠가 자랑스러워요' 라고 답문을 보내요. 그런 문자를 받으면 제가 또 펑펑 울죠."

"이제는 제대로 가수생활을 할 수 있으니 가족의 경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주고 싶어요. 먼저 아이들에게 번듯한 집을 마련해주고 싶고 지금 비록 아내와 헤어졌지만 경제적인 부분만큼은 끝까지 책임질 거예요. 아빠로서, 부부의 연으로 만난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게 맞아요."

▶ 방황하고 있는 청춘들이여,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잊은 것이다.

목소리를 되찾은 박완규는 요새 노래가 너무 부르고 싶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한 곡 더 부르면 어떻게 하지'라고 고민했던 그가 이젠 노래를 하지 않아도 되는 방송에서도 노래를 시켜달라고 할 정도.

박완규는 "인터뷰하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노래가 너무 부르고 싶어 죽겠다"라고 말했다.

"10월에 단독 콘서트를 할 계획입니다. 지금은 공연해도 목에 큰 무리가 가지 않아요. 지금은 4옥타브도 가능하고 MR로 10곡을 부르는 건 일도 아녜요. 하지만 기왕 새롭게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으니 더 좋고 건강한 목소리로 찾아가고 싶어요."

그에게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했다.

"태원형님이 저에게 '완규야, 너는 잃어버린 거라고 생각하지? 잃어버린 게 아니야. 잊은 거야. 기억해봐. 에너지 넘치고 희망을 갖고 아름답고 생각했던 때를 기억해내.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그것들이 그 자리에 그래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라고 말씀 하신 적이 있어요. 돌아보니 분명 다 거기 있었어요. 그런데 저 혼자 방황하고 힘들어하고 가두고 있었던 거예요. 방황하는 분들께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내 인생의 최고의 순간, 노력했던 순간을 기억하라고. 시간을 잃어버린 게 아닌 잊어버린 거라고. 그럼 그 기억이 찾아오면서 다시 노력하실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박완규에게 록이란 무엇일까. 그는 '햇빛'이라고 대답했다.

"제가 요새 많이 탔죠? 요새 선크림을 안 바르고 다녀요. 야외촬영이 있을 때도 안 발라요. 방황했을 때는 해가 뜰 때 잤고 해가 질 때 눈을 떠서 활동을 했어요. 얼마나 햇볕아래서 노래하고 싶었겠어요. 돌아다니고 싶었고 사람들도 만나고 싶었죠. 그래서 지금 햇살을 그대로 받아요. 태원형님한테 실제로 이런 문자를 보냈어요. '해가 뜰 때 잤고 해가 질 때 눈을 떴습니다. 어두운 곳을 걸었고 밤에 노래했습니다. 다시 햇볕아래서 노래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 록은 햇빛이에요. 그대로 내리쬐어주는 햇빛이요. 그래야 푸르게 자랄 수 있으니까요."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사진|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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