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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오디세이] 흔한 얘기-기발한 전개..로맨스 코미디

입력 2010.09.17. 15:09 수정 2010.09.1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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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라노:연예조작단

 서울 강남에서 연애학원이 성업 중이다. 말 그대로 연애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화술, 옷차림, 상황별 대처법부터 강사와의 일일 데이트를 통한 실전연습까지 한다. K원장은 "학원생들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꽤 우수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시라노:연애조작단'(감독 김현석)은 이런 세태를 바탕에 깔고 보면 더 흥미롭다. 영화는 공연에 실패한 연극인들이 연애 에이전시를 차린 데서 시작된다. 의뢰인이 원하는 상대와 맺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에도 나오는 연극 '시라노 드 벨주락'의 컨셉트와 똑같다. 윌 스미스 주연의 'Mr. 히치-당신을 위한 데이트 코치'와도 그 발상이나 전개 과정이 유사하다. 연애에 서투른 사람을 도와 사랑을 맺어준다는 얘기다. 하지만 'Mr. 히치'보다 훨씬 정교하다. '시라노'는 한국영화가 비슷한 컨셉트의 할리우드 영화보다 완성도가 뛰어난 드문 경우다.

 사실 스토리는 웬만큼 예상할 수 있다. 연애 숙맥인 의뢰인과 연애 코치, 타깃녀 사이에 모종의 갈등이 발생한다. 관건은 그 갈등을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풀어가느냐다. '시라노'는 그 방법이 기발하고 재치있다. 영화를 촬영하듯이 조명, 음향까지 준비하고 때로는 비밀작전을 수행하는 요원들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유쾌하다.

 이때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은 다소 과장돼 있다. 네 명의 직원이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장면은 홍콩 느와르를 패러디한다. 연애와 조폭의 거리를 단번에 무너뜨린다. 그런 점이 오히려 웃음을 자아낸다. 따뜻한 인간애를 훈훈하게 그려낸 것도 장점이다. 잔잔한 여운이 남는다.

 병훈(엄태웅)은 시라노 에이전시 대표다. 연극 '시라노...'의 흥행 실패로 빚더미에 앉는다. 호구지책으로 연극의 컨셉트를 활용해 단원들과 연애 에이전시를 차린다. 어느 날 젊고 유능한 펀드 매니저 상용(최다니엘)이 찾아온다. 스쿠터를 즐겨 타는 희중(이민정)이 타깃녀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희중은 병훈의 옛 연인이었다. 밥벌이를 해야 하는 연애 에이전트와 헤어진 연인, 여기에 영혼이 순수한 의뢰인이 삼각 축을 이룬다. 영화는 이들의 갈등을 가볍게 터치한다. 그렇다고 비현실적이거나 허황되지 않다. 그 비결은 정교한 디테일에서 찾을 수 있다. 사소한 에피소드까지 기승전결의 구성을 갖춰 완결된다. 현실과 허구의 줄타기가 절묘하다.

 희중이 반지를 조개탕에 빠뜨리는 장면은 프랑스에서 결별의 상징이었다. 강릉 바닷가에서는 조개 속의 반지가 프로포즈를 위한 소품으로 사용된다. 연애편지를 대필하는 연극 주인공과 병훈의 유사성을 연결하거나, 사랑과 믿음이라는 기독교 윤리를 병훈과 상용의 관계에 원용하는 장면도 자연스럽다. 배우들의 고른 연기력도 영화가 톤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어색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희중은 아그네스 발차의 노래를 듣고 카페 직원으로 변장한 병훈에게 가수 이름과 노래 제목을 물어보면서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마지막에 병훈의 존재를 떠올리면서 상용에게 전화하는 장면도 다소 혼란스럽다. 하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아귀가 잘 맞아 물샐 틈이 없을 만큼 구성이 탄탄하다. 로맨스 코미디만큼 잘 만들기 어려운 장르도 드물다. 수많은 문학, 연극, 뮤지컬, 영화에서 다뤘다. 조금만 삐끗하면 상투적이고 지루해진다. '시라노'는 흔한 소재를 독창적으로 변주한 웰메이드 영화다. 잔혹 복수극에 지친 관객들이 가볍고 따뜻한 영화를 보고 싶을 때 주저없이 선택할 수 있다.

  < dad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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