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김혜수·김선아 의지 약했다면 자살했을 것″(기자회견 전문)

2008. 1. 2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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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연예] '괴담'의 주인공 나훈아가 입을 열었다. 나훈아는 일체의 괴소문에 대해 "한 게 없어 해명할 게 없다"며 공식 부인했다. 또 '사실 확인 없이 소문에 근거해 기사를 쓴 언론'에 대해 씁쓸함을 표함과 동시에 질책에 가까운 비판을 가했다.

특히 나훈아는 기자회견 도중 일어서 바지 지퍼를 반쯤 내리며 "밑이 잘렸다고 한다. 내가 여러분 대표에게 직접 5분간 보여주면 믿겠느냐"고 소리치며 격렬하게 '야쿠자 린치설'을 부인했다.

25일 오전 11시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는 취재진 및 관계자, 팬클럽 회원 등 700여 명이 자리를 메웠다. 부산과 서대문 지역의 경찰들도 참석해 상황을 주시했다.

나훈아는 "이미 만신창이 된 나는 어떻게 돼도 상관이 없지만, 아직 미혼인 후배 김혜수와 김선아에 관한 것은 반드시 바로잡아 달라"며 "진심이 담긴 사과도 함께 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김혜수와 김선아가 의지가 약하고 힘든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면 자살을 할 수도 있었다"며 이는 언론이 '펜대'로 사람을 죽이는 행위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또 가수인 자신은 '꿈'이 없으면 노래를 부를 수 없는데 꿈이 고갈되고 있다는 위기를 느껴 2006년 말 1년 간의 휴식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난 한 해 해외 대학교에 개설된 스페셜 프로그램의 강의를 듣는가 하면 전라남도 남원에서 시작해 서울 근처까지 도보 행군을 하며 꿈을 충전하는 시간을 보냈다고 전했다.

나훈아는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인해 꿈으로 충전돼 가고 있던 자신의 가슴이 다시 비었다며 "이 가슴으로는 노래를 부를 수 없다"며 잠정 은퇴를 선언했다.

나훈아는 지난해 2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예정됐던 콘서트가 갑작스럽게 취소된 뒤 1년 가까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투병설과 일본 조직폭력단과의 연루설, 여배우와의 염문설, 신체일부 훼손설 등 각종 루머에 시달려왔고, 루머에 함께 휩싸인 영화배우 김혜수와 김선아가 '루머 당사자가 아니다'고 공식 해명하기도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홍종선 기자,사진=곽경근 기자 dunastar@kmib.co.kr

<나훈아 기자회견 전문>

제 속마음이 오늘 아침의 차가운 날씨 같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해명한다고 얘기하는데 '해명'이라는 뜻은 어떤 사건이 문제가 됐을 때 그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밝고 명확하게 설명을 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한 게 없기 때문에 해명을 할 게 없습니다.

오히려 해명은, 확실치 않은 얘기를 제대로 실제에 근거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보도를 한 기자나 언론에서 해명을 해야 됩니다. 저는 절대 이런 자리를 만드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절대 나와서 이런 얘기를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왜 하지 않으려고 했는지는 얘기를 하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40년을 노래했습니다. 오늘 여기 모이신 기자 여러분, 카메라 후레쉬를 터뜨리고 있는 여러분. 만약에 마흔 살이 되지 않은 분들은 제가 노래를 시작할 때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마흔 살이 조금 넘은 분들은 아장아장 걷디 시작할 때 저는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40년을 했기 때문에 대우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대한민국에 그런 정서 없는 줄 압니다. 대우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기사를 쓸 때는 더 알아보고 더 챙겨보고 썼어야 한다는 겁니다.

기사는 진실을 바탕으로 해서 사람들에게 대중들에게 알려야 하는 것인데 진실은 어디로 가있고, 엉뚱한 얘기들만 하나부터 열까지 난무하고 있는 겁니까. 만약에 이런 식이라면 뭐하러 목숨을 담보로 전쟁에 가서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서 죽기까지 하는 기자들이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이 자리에 오기 전에 아무를 만나 오늘에 관한 얘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뭘 써가지고 나온 것도 없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를 있는 그대로 하고 싶었기 때문에, 두서가 없거나 말이 안 맞는 부분 있어도 이해를 해주십시오. 끝까지 질문 하지 마시고 들어주십시오. 오늘은 제가 얘기할 차례입니다. 끝까지 들으셔야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분들입니다.

'나는 소문난 거 적기만 했어'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다른 사람이 썼기 때문에 썼다'는 분은 방조자입니다. '나는 한 줄도 안 썼어'라고 하는 분은 방관자입니다. 적어도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써내려 갈 때는, '이거는 아니다, 이거 신중해야 한다'고 말 한마디라도 나왔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끝까지 안 나오려 했습니다. 유독 연예계만은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지겠습니다. 그렇게 길지는 않을 것입니다.

얘기에 앞서 얘기할 내용의 이해를 위해 아셔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에, 미리 말씀 드릴 게 2가지 있습니다. 왜냐 무슨 일이든 시작이 있고 중간이 있고 끝이 있는 법입니다. 어떤 사람이 길가에 두들겨 맞고 피를 흘리고 있다, 사람들은 일단 '누가 때렸어? 정말 나쁜 놈이야' 하겠죠. 그런데 알고 보니 두들겨 맞은 사람이 자기 아버지를 폭행하고 어머니를 때리고, 이 세상에서 못된 짓을 다 하던 사람이라면 '아이고, 잘 맞았다' 할 것이기 때문에 사전 설명을 하려는 겁니다.

설명은 두 가지만 하겠습니다. 오늘 공연하자 해서 내일 할 수 없습니다. 길게는 1년 여, 짧게는 4∼5개월 전에 준비를 마쳐야 공연이 가능합니다.풀어 말씀드리면 공연장소를 계약하는데 한 두달 전에는 계약이 안 됩니다. 모든 게 1년 전 혹은 5∼6개월 전에는 준비가 돼야 합니다.

두번째 저는 40년을 노래했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 뭣하지만 제가 공연을 할 때 표가 없습니다. 표를 구하려해도 표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공짜가 없는 법이죠? 이렇게 40년을 오기까지는 '꼭 이렇게 해야만이 많은 사람이 와서 박수를 쳐줄 수 있는 거구나'라는 자기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성공적으로 공연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도 저에게는 3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약속을 잘 지켜야 합니다. 언제 만나자 어떻게 하자가 아니고, 많은 사람이 기대를 하고 공연을 보러 왔을 때 그 기대는 제가 하게 만든 것이기 때문에 무언의 약속입니다. 오신 분들이 실망하지 않게 공연하지 않는 것이 약속입니다. 멋대로 펑크를 낸다든지 일정을 바꾼다든지 하는 것은 제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둘째 진실해야 합니다. 길게 노래하다 보면 쉽게 하는 법을 알게 됩니다. 세월이 가면 박자를 늘렸다 줄였다 하죠. 힘든 부분에서는 슬쩍 도망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연 보러_ 오시는 분들이 다 압니다. 무대에서는 거짓말하지 말고 노래해야 합니다. 무대 전체에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무대에서 땀 몇 바가지를 흘리더라도 진실되게 해야합니다.

마지막이 가장 중요합니다. 첫번째 약속, 두번째 진실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자고 마음 먹으면 다 합니다. 세번째는 마음 먹어도 누구나 되지 않는 것입니다. '꿈'입니다. 수십 억 원씩 하는 조명이 무대에 달려있습니다. 무대에 출연하는 사람 예쁜 옷, 거리에서 입지 못할 예쁜 옷을 입고 나갑니다. 막이 떨어지는 순간부터는 그 무대는 꿈이어야 합니다. 두 시간 이상을 혼자 끌어나가기에는 이 꿈이 없으면 힘듭니다.

특히 제 공연에서는 무대연출, 감독, 출연 제가 혼자 다 합니다. 그러니 꿈이 더 필요합니다. 꿈을 팔자면 제가 꿈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매년 공연을 똑같이 해본 적이 없어요, 어떻게 바꿔도 바꾸지. 그렇게 하자면 기막힌 아이디어도 나와야 하고, 사람들이 보고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하는 무대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꿈을 팔려면 제가 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꿈 얘기 중요합니다. 꿈을 어디서 충족을 하느냐. 제가 지금까지 노래를 해오면서 한 5∼6년 전부터 꿈이 발목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힘들기 시작했습니다. 꿈이 조금씩 고갈된다는 느낌을 누구에게 말하지 못하고 가지고 있었습니다. 4년 전에는 늘 그래왔듯 12월31일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내려오는 계단에서 갑자기 겁이 덜컥 났습니다. '아, 내년에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어떻게 공연을 하지'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공연이 끝나면 우리 스태프들, 식구들 모여 파티를 합니다. 마지막 날에는 좀 크게 하죠. 제가 말했습니다. 큰 일 났다, 신중하자. 가는 데 마다 관객이 젊어져서 관객의 박수가 꼭 젊은 가수가 공연하는 것처럼 되다 보니까, 우리 스태프들이 경거망동 할 수 있단 얘기죠. 겸손하자는 얘기를 수십 번 수백 번 했습니다. 한 발자국만 다른 사람보다 뒤로 서자고 말했어요.

공연 끝나고 1∼2월에는 인솔 하에 각 스태프의 장들을 외국에 보내왔습니다. 제가 하는 말이 '뭔가 건져오고, 뭔가 느끼고 오시오'입니다. 우리 스태프들도 꿈을 가지고 있어야 한마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설명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세종문화회관을 별안간 취소하고 펑크를 내고, 돈까지 물어줘 가면서 공연을 취소했다…. 내가 공연을 잡고 내가 취소를 했으면 세종문화회관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문제가 돼야하는데 딱 세종문화회관 한 군데 였습니다. 나는 세종문화회관이 잡혀있는 줄 몰랐습니다.

(세종문화회관 공연 취소가) 작년 초의 일이죠. 재작년에 다음 해 공연은 잡지 말라고 미리 얘기를 했기 때문에 잡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공연기획사 측에서 공연을 잡아놓고 혹시나 나훈아의 마음이 바뀌지 않을까 기다린 겁니다. 세종문화회관은 까다로워서 공연 스케줄을 잡기도 어렵습니다. 그 얘기 하자면 설명이 기니까 빼겠습니다. 아무튼 까다롭다 보니까 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혹시 (나훈아가) 마음이 변해서 하지 않을까.

저는 몰랐습니다. 세종문화회관 하나(가 잡혀있던 것)를 몰랐습니다. 있었던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대로. 그것을 쓴 기자가 한발짝만 움직이면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을 만났을 것입니다. 한쪽으로 몰고 가고 싶어 기획사 만나지 않고 기사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기획사만 만났으면 제대로 밝혀졌을 것인데, 가고 싶은 데로 가기 위해 그 길로 간 것입니다.

그러더니 또 회사(소속사인 아라기획) 문 닫았다고 하더군요. 제가 쉴 때는 회사는 아무 것도 못 합니다. 그러더니 또 잠적했다, 잠행했다, 행방이 묘연하다는 단어를 써가며 여기저기서 잠적했다고 보도를 하는 겁니다. 잠적했다는 소리가 나오는 그 날, 신문과 방송에 이 말이 나오는 날 저는 우리 스태프들과 휴가를 가있었습니다.

여기서 오늘 오랜만에 봤기 때문에 (회사 직원에게 묻듯이) 거기 휴가에 간 사람 있어요, 없어요? 소리 크게! (청중에서 "네"). 거기서(휴가지)도 벌써 정보가 오기 시작한 겁니다. 거기서 스태프들이 '왜 저럽니까, 쟤들 왜 저래요?'하길래 딱 한마디 했습니다. "나둬라, 말 같잖으니까 나둬라."

연예 바닥이 늘 그래왔듯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긁어 놓고, 네티즌을 들끓게 만들고…. 이거 누가 하는 겁니까, 이걸 부추기는 사람이 누굽니까.

자, 아까 제가 꿈 얘기를 했습니다. 저는 늘 해마다 공연이 끝나고 1∼2월에는 가슴에 꿈을 채우기 위해 외국에 가서 좋은 공연도 보고 좋은 풍경을 보면서 가슴 찡 하는 것도 보면서 그렇게 가슴에 꿈을 담는 겁니다. 꿈을 가슴에 담아야 좋은 가사 좋은 곡이 나온다는 걸 언제부턴가 알게 되었던 거죠. 그래서 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작년에 왜 쉬게 되었느냐? 무슨 획기적 변화가 있어야지 '늘 보는 게 그게 그건데, 조금 지겨울라 한다'는 소리가 나오면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런 소리 나오기 전에 꿈을 키워야 합니다. 획기적으로 뭔가 바꿔 공연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것을 하기 위해 한국 깊은 산골짜기를 찾아가기로 한 것입니다.

전남 남원에서 뱀사골로 해서 경상도까지 걸어가는 겁니다. 사람이 오면 없는 데로 걸어가고, 모자를 쓰고 얼굴을 가린 상태지만 주의가 깊은 분들은 알아보기도 하거든요. 피하면서 개울 만나고. 제일 힘들었던 게 식사해결 입니다. 나이 든 할머니가 뭔가를 만들고 있는 식당에 쓱 들어가서 밥을 먹다보면, '따뜻한 국 하나 더 드시오'하고 가져오실 때 꿈이 가슴에 들어오는 겁니다.

옛길이라고 옛 선비들이 서울 오던 길로 서울 근처까지 걸어왔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신문에 뭐라고 났느냐. 남의 마누라 뺏어 가지고 갔다…. 가정파괴범입니다. 실제는 물론이고 꿈에라도 남의 마누라를, 가정을 파괴하는 마음이 눈꼽만큼만이라도 있었다 해도 여러분이 아니고 여러분이 집에서 키우시는 개입니다. 옆집 개, 건너집 개라도 좋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은 간통죄라는 게 있는 법치국가입니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이미 법적으로라도 문제가 났어야 합니다. 상대하는 게 자존심 상하고, 긴 세월을 노래 했기 때문에 많이 당했기에 (가만 있었습니다). 매스컴의 속성을 잘 알죠. 아니면 아니다라고 쓰지 않고, '아'라고 했는데 '어'라고 쓰는….

또 (제가 말을 하면) 시끄럽게 떠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을 겁니다. '코는 코대로 간다'는 경상도 말이 있습니다. 진실은 시간이 걸릴 뿐이지 알게 된다는 말, 저는 믿습니다.

스포츠지 월간지를 비롯해 여기저기 수근수근대니까 아는 사람들과 친척들이 물어오더군요. 대답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상대는 한 사람이지만 나는 많잖아요. 할 수 없이 전국을 샅샅이 돌아다니고 싶었으나 포기 하고 외국에 나갔습니다. 학교를 들어갔습니다. 학교가 대학교는 대학교인데 정규과정은 아니고, 그 학교의 스페셜 프로그램이에요.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간단한 테스트는 거쳐야 합니다.

숙제하면서 밤새면서, 저희 나라 말이 아니니까 밤새면서 가슴에 꿈을 담는 겁니다. 프리젠테이션 있을 때는 거의 3일간 잠 못잤고 날마다 제가 제일 먼저 와있습니다. 결국 그 학교에 한국학생 몇 사람, 하나둘 다니다보니까 저를 알아보기 시작하는데 행동반경이 또 어려워졌습니다. 학교를 가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었는데 이제 제 등에 대한민국 태극기가 등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힘들어진 거죠. 1년만 다니고 싶었는데 못 다니고 들어왔죠.

그랬더니 이제는 나를 죽이는 겁니다. 멀쩡한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부산 모 병원에서 입원을 했는데 후두암에 걸렸다, 몹쓸 병에 걸려서 죽을 병에 걸렸다는 겁니다. 아시는지요, 멀쩡한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부산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작년 시작부터. 근데 부산 모 병원에 입원해서…. 그래요 부산까지 찾아갔더군요. 그래 결과가 뭡니까? 제가 단언컨대 공공장소에, 대한민국 공공장소에 3분 이상을 서있어 가지고 제가 거기 온 게 소문이 안 난다면은 여러분들이 시키는대로 다 할게요. 부산병원에 입원했었다면은 어떤 경우든 어떤 형태든 본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여러분 다 압니다, 꾼들이기 때문에. 이거 뭐 기사에서 냄새가 난다는 거요. 벌써 찾아가서 아니다, 못봤다 하는데도 여기저기서 계속 (보도가)나오는 겁니다. (고개 숙이고 한숨). 그래요 여러분이 펜으로 나를 죽입니다. 그 때 옆에서들 이런 저런 얘기를 하시는데, 말할 가치도 없고 말을 대꾸할 이유도 못 느끼니까 가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은 사람이 눈 뜨고 다니는 게 내가 이상해졌어요.

여러분, 다 읽고나서 보면 별 거 아닌데. '죽을 병에 걸렸다더라' '부산 병원에 입원했다더라'…. 성질 급한 사람은 제목만 읽습니다. '걸렸다카던데' '죽었다카더라' 이런 식으로 말이 퍼지는 겁니다. 그래요 죽었습니다.

40년을 노래했습니다. 물론 잘못한 것도 있겠고, 뭘 한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한 것도 있을 겁니다. 저를 탁구대에 올려놓고 핑퐁을 치고, 장구를 치고, 어디 갔다 하더니 마지막에는 잠행, 잠적했다 하기에 이러는 겁니다.

카이로에서 카사블랑카를 갔는데 마침 이슬람에 추석 같은 날이 앞뒀기 때문에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귀에서 피가 나고 코에서 피가 나고. 아마 감기 기운에 스트레스일 겁니다. 그러나 병원 갈 수도 없고 약도 없이 며칠만에 나았습니다, 건강하게. 암에 안 걸렸습니다.

어느 날은 사원인데 거기서 시체를 태우는 겁니다. 시냇물 건너 4구의 시체가 타고 있었어요. 맨 오른쪽 시체는 거지, 맨 왼쪽은 상당히 부자 시체였습니다. 그 타는 모습은 똑같았습니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일어서지도 못하고 앉아서 보는데, 남들 앞에서 울면 안된다는 생각에 울 줄 모르는데 그날은 가슴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코끝 찡, 눈 뜨거워지는 건 가끔 있는 일인데 수건까지 꺼내야 하게 됐섭니다.

뭔가 마음이 약해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가슴에 꿈은 그런 것에서 많이 들어와 지는 거예요. 제가 쓴 가사 중에서 '혼'이라는 노래에 '살다보면 알게 돼'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그런 거를 보면서 가사를 쓰게 되는 거죠.

14개국, 도시까지 합하면 20여군데를 돌았습니다. 근데 돌아와보니 삼류소설이라고도 볼 수 없는 (괴소문이 퍼져 있었어요). 기가 막힌 겁니다. 야쿠자라뇨. 공부하는 중간에 'seeing is beliving'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위에 올라가서 여러분이 원하는대로 하겠습니다.

(탁자 위에 오른다) 내려서 5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니면 믿으시겠습니까?(청중석 팬들 "믿습니다"). (탁자에서 내려온다) 밑에가 잘렸다는 것은….

자, 여러분. 제가 오늘 나온 이유를 이제 얘기하는 겁니다. 아마 제 주위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절대 안 나올 것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후배 배우들이…황당무개하고 기가 막히고. 여러분 '펜대'로 사람 죽이는 거 아시는지요. 의지가 약하고 견디기 어려운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을 때는, 이 두 여인은 자살을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펜대로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제가 여러분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 결심을 하고, 한국에 연락을 한 것이 언제냐. 일요일이었습니다. 그 때 뭐가 저를 힘들게 했느냐. 이 두 여인이 "아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 처자들이, 여러분이 모르는 남자친구가 있고 가족까지 만나는 사이라면 황당 안 합니까. 이거를 (남자 쪽에)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합니까. 만일 그 집안에서 안 뗀 굴뚝에서 연기나냐 하면 어쩌실 겁니까.

한국은 안 떼도 굴뚝 나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니가 처자를 어떻게 했기에 이런 소리가 나오냐'고 말하신다면 할 말 없습니다, 할 말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왜 둘이 나왔을까요. A B C D E F G…. K는 뭐고, C B A는 뭡니까. 그게 사람 죽이는 거 모릅니까, 알잖습니까. 아니면 그만이고, 맞으면 한탕하고…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왜 이러시는지요.그래요, 연예인은 사람들의 호기심이 많은 직업입니다. 하지만 좀 엇비슷해야죠. 신문사 사정은 모르겠습니다. 그 분의 일의 분량이 많아서 제대로 안 뛰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뛰어야죠. 진실에 가까운 걸 보도해야죠.

'글래머 K'…. 김혜수, 김선아라고 이름을 댔으면 차라리 한 사람만 댔으면. 그래도 당혹하고 힘들겠지만, 한 사람이라도 살지요. 김선아다, 김혜수다 이렇게 나오는 거죠. 이건 아닙니다, 여러분. 이래서는 안 됩니다. 이거는 '니 맘대로 해라, 놔두라' 하기에는 이 처자들은 너무나 젊습니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그나마 구겨진 엉망진창이 된 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일요일에 결심했습니다. 경찰 내사 들어가니 심리적 압박을 받아서 나온다, 웃고 말겠습니다. 경찰이 우리 세금으로 일하는데 소문 그것도 괴소문으로 수사 하면 안 되죠. 정보과 있잖습니까. 정보과에서 한번 해보면 다 나오지요.

이렇게 엉망진창인 망가질대로 망가진, 아니다 기다 하는 것도 어느 정도지, 이걸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런 걸 좋아할 자식은 누가 있겠습니까.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습니다. 어차피 만신창이 되어 다 찢겨졌지요. 꿈이고 지랄이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뭐 좋습니다, 어차피 엉망진창 됐습니다. 오늘 들으신 내용도 여러분이 쓰고 싶으신대로 쓰십시오. 하지만 김혜수 김선아는 바로잡아 주십시오, 꼭 바로잡아 주십시오.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도 함께 보여주십시오. 그래야 대한민국 연예계 언론이 하나 더 업그레이드 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정말 진솔하게 바로잡아 주십시오. 그것 때문에 제가 오늘 나온 겁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머리도 희고…. 어차피 사실이든 아니든 이 후유증은 깁니다. 여러분, 저는 이 후유증이 잠잠해지길 기다리기엔 머리가 너무 많이 시었습니다. 이번에 이렇게 힘들 때 저를 믿고 제 편이 돼준, 전국에 저를 사랑하는 전국의 모임들이 있습니다. 저는 꼭 체크를 하거든요, 그 사람들 때문에 아픈 것들을 견딜 수가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래도 자신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괜찮다 해도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제 가슴에 꿈이 없으면 못합니다. 제가 못합니다, 제가 힘듭니다. 이 가슴으론 못합니다. 다시 한 번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김혜수, 김선아 바로잡아 주십시오. 나는 멋대로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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