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뻐꾸기] '사랑과야망' 부진은 시대변화탓?

2006. 3. 1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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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최고 시청률은 74%였다. 당시 공식적인 시청률 조사기관이 없어 세운상가 등 전파상에 켜놓은 TV 수상기를 보고 짐작한 수치지만 어쨌든 경이적인 기록이다. 20년만에 똑같은 작가와 PD에 의해 리메이크된 SBS '사랑과 야망'은 12회까지의 전국 평균 시청률이 13%대에 그치고 있다.

원작만큼의 시청률을 예상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기대에 훨씬 못미치는 성적이다. 부진의 이유로는 캐릭터와 배우의 부조화가 먼저 거론됐다.

조민기가 극중 23세의 대학생 역(태준)을 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어 정애리와 조민기의 모자 설정이 어색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마치 누나와 남동생 같다고 한다. 몇몇 인물의 밋밋한 연기도 도마위에 올랐다.

그러나 연기력 부족은 지엽적인 이유다. 본질적인 건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랑과 야망'은 가난한 사람들의 대표적인 성공 스토리였다. 여기에 멜로를 깔고 있다. 근대화가 진전되며 1차 오일쇼크와 부동산 투기 붐이 일었던 한국의 1960, 70년대에 가난한 사람이 출세하려면 고시에 붙거나 몸으로 때워 사업을 성공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를 나온 형(조민기)은 고등고시에 붙어 대기업의 엘리트가 됐고, 공부보다는 의리를 중시하는 동생(이훈)은 배포와 감각만으로 광부와 어부 등을 거쳐 굴지의 건설회사를 일군다.

원작이 방영되던 당시 시청자들은 정반대의 방식으로 출세하는 두 형제의 석세스 스토리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가학과 피학을 오가는 과거 김수현 작가 특유의 극단적인 '대나무형 캐릭터'(서로 부딪히면 부러지니까)들은 시청자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러나 요즘 세대는 개천에서 용나는 성공담을 그린 드라마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면 충분하다. 조강지처를 배신하고 부잣집 여자와 결혼해 출세한 남자, 이에 독기를 품는 여자의 한 서린 이야기는 신세대에게 절실하게 와닿지 않는다. 좀더 '쿨'한 방식의 이야기 전개를 원한다.

행정고시에 붙고나서는 조금 부드러워졌지만 굳은 표정으로 일관하는 태준이 당시에는(남성훈) 카리스마를 보여줄 수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은(조민기) 답답함을 유발할 수 있다.

공사판과 막장을 전전하고 고깃배에서 그물질하는 태수 역을 맡아 그해 최고의 인기스타가 된 '터프 가이' 이덕화가 당시 스킨 로션을 힘차게 바르는 화장품광고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사랑과 야망'에서 형성된 마초적인 이미지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준기 등 크로스섹슈얼과 비(정지훈) 등 각종 로맨틱 가이와 스위트 가이가 넘쳐나는 시대에 신세대들은 한물간 카리스마와 마초를 수용할 감수성이 없다.

'사랑과 야망'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시대극이 기대에 못미치는 이유는 잘 만들고도 시청률 확보에 실패한 '황금사과'의 케이스와 유사하다. 시대의 아픔을 화해와 사랑으로 보듬는 드라마 스토리에서 '시대의 아픔'을 공감하지 않는 게 요즘 세대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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